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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때이른 승리 선언을 경계한다

입력
2019.12.0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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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은 11월 23일 종료 예정이었다. 하루 전인 22일 NSC가 브리핑을 했다.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정지시키되 향후 언제든 다시 종료시킬 수 있고, 한일 간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WTO 제소도 중지한다고 했다. 즉시 일본 발로 이상한 발언이 흘러나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기자회견을 열어 기존 수출규제에 아무 변동이 없고 오히려 한국의 WTO 제소 중단을 한국 측이 수출관리상의 문제점 개선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우리 측이 전향적 자세를 보여 대화에 응한다는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틀 뒤 공식 브리핑을 열어 반박에 나섰다. 첫째, 일본이 먼저 합의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둘째, 우리가 먼저 WTO 절차 중단을 통보하지 않았다. 셋째, 양국은 “한국의 수출관리 제도 운용의 확인을 통해 수출규제 조치를 해소하는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을 뿐이다. 넷째, 경산성 발표에 대해 우리 측이 항의하자 일본이 사과했다. 덧붙여 정 실장은 징용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 대화도 없다는 원칙을 일본이 굽혔고,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무관하다는 원칙 또한 일본이 스스로 깼다고 주장했다. 이번 협상이 사실상 우리 승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승리’로 보기엔 좀 이르다. 우선 우리에게 유리한 내용이면 일본 측이 왜 먼저 언론에 흘렸는지 의문이다. 둘째, 정 실장은 WTO 제소 중단을 우리가 제의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왜 이 내용이 최종 합의에 포함됐는지 설명이 없다. WTO 절차는 아직 패널 구성도 안 됐다. 우리가 일본을 WTO에 제소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 때문이었다. 아직 수출규제가 중단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제소를 중단한 것은 이상하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는데 돈부터 내는 격이다.

셋째, 정 실장 설명에 따르면 양국은 “수출관리 제도 운용의 확인을 통해 수출규제 해소 방안을 협의키로”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해소’를, 일본은 ‘확인’을 강조한다. 외교 협상에서 각 측이 원하는 요소를 합의에 넣고 국내적으로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상대방의 아전인수조차 예방하고 싶었다면 더 심도 있는 협상으로 언론 대응까지 세밀히 조율했어야 했다.

넷째, 일본 측은 ‘사과’에 대해 공식 부인하고 있다. 사실 우리 측이 사과받았다 하고 상대국이 부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7월 러시아 군용기 영공 침범 당시 청와대는 러시아가 사과했다고 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즉각 부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주한대사관을 통해 사과받았다고 한다. 주한대사관 직원들은 항상 우리 정부에 ‘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주재국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 차원의 유감이나 사과로 해석될 발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상대국의 공식 사과로 보긴 어렵다.

일본 측이 입장을 굽혔다는 우리 측 해석도 일본 측은 충분히 달리 생각할 여지가 있다. 징용문제에 대해 일본은 계속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징용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간 대화도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 적이 없다. 오히려 수출관리 문제로 우리 측에 거듭 대화를 요청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 협상의 평가에는 시간이 걸린다. 향후 한일 간 대화를 두고 볼 일이나 현재까지 결과만 보면 우리 측의 ‘승리’ 주장은 궁색하다. 지소미아 연장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 유지를 위해선 일본의 수출규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원칙대로라면 일본의 입장 변화가 없으니 지소미아는 종료해야 마땅했다. 협상 결과만 봐서는 왜 연장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소미아 사태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향후 정부가 추가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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