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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생생과학] 달 탐사, 우주괴물보다 먼지가 무섭다

입력
2019.12.07 13: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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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69~72년 아폴로 유인 우주선을 6차례 달에 보냈다. 아폴로에 탑승했던 우주인들이 달에 착륙했을 때 공통적으로 느꼈던 위협은 희한하게도 ‘먼지’였다. 달 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우주선을 강한 먼지 폭풍이 뒤덮었고, 달 표면에 내려선 우주인의 온몸에도 먼지가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우주인들은 브러시로 자신의 우주복과 우주선 구석구석에 붙어 있는 먼지들을 필사적으로 털어내야 했다.

달의 먼지는 달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나아가 거주하려는 인류의 꿈을 방해하는 주요 훼방꾼이다. 지구 먼지와 비교해 형태, 분포, 특성이 다르다.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달 탐사도, 달 거주도 실현 가능해진다. 그래서 우주 선진국들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달 표면 환경을 본뜬 장치를 만들어 그 안에서 탐사 기술을 연구하려 한다.

흥미롭게도 달 표면 환경을 본뜬 세계 최대 규모의 장치가 이달 초 우리나라에서 공개됐다. 경기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설치된 거대한 ‘진공챔버’는 우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작동해야 하는 첨단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치다.

1969년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실험 장비를 들고 월면토로 덮인 달 표면을 걷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69년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실험 장비를 들고 월면토로 덮인 달 표면을 걷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작지만 위협적인 흙 알갱이

달 먼지의 정체는 바로 미세한 흙 알갱이다. 달 표면을 뒤덮고 있는 월면토가 이리저리 날리면서 먼지처럼 보이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오염물질이 상당량을 차지하는 지구의 미세먼지와는 성분이 전혀 다르다. 달 먼지 알갱이는 지름이 대략 10~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다. 크기로 치면 지구의 미세먼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구의 흙은 풍화작용을 받아 현미경으로 보면 형태가 둥글둥글하다. 반면 공기가 없는 달에선 풍화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월면토 알갱이는 그래서 뾰족뾰족하다. 미세하고 날카로운 흙 입자가 우주선 기계장치 구석구석에 침투하면 성능에 문제가 생긴다. 특히 우주선에 동력을 공급하는 태양광 패널에 달라붙으면 발전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우주인이 입는 우주복에 붙으면 어두운 색깔 때문에 태양열을 흡수해 온도를 빠르게 올린다. 자칫 우주인 맨 살에 닿으면 피부를 파고 들거나 호흡기로 들어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큰 위협은 달 흙먼지에 충전돼 있는 정전기다. 달 표면의 절반 가량은 태양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광전효과(빛을 쪼이면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의 영향으로 양(+)전하로 대전(어떤 물체가 전기를 띠는 현상)된다. 반면 태양빛을 받지 않는 나머지 절반 영역은 지구 자기권의 영향을 받아 음(-)전하를 띤다. 대기가 없는 달 환경에선 이 같은 대전 효과가 극대화한다.

대전 효과는 월면토에도 나타난다. 미세한 흙 알갱이 하나하나가 정전기를 띤다는 얘기다. 같은 전하를 띤 월면토 입자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힘(척력)이 작용한다. 또 달의 중력을 이길 만큼 가벼운 입자들도 무수히 많다. 그래서 흙 입자들이 달 표면의 수m~수㎞ 높이에 떠 다니다가 전기적으로 중성인 우주선이 착륙하면 득달같이 달라붙는 것이다. 정전기를 일으킨 책받침을 머리카락에 대면 금새 달라붙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간혹 전기가 통하는 물체에 손을 댔을 때 순간적으로 따끔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게 바로 정전기의 영향이다. 충전돼 있는 정전기가 많은 달 환경에선 이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서로 다르게 대전된 기기가 달에서 접촉할 경우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연구논문도 최근 발표됐다. 이 같은 달 흙먼지의 영향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가 결국 달 탐사 성공을 좌우할 수 있다.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2호 조종사 앨런 빈이 달 표면에 내려 월면토를 채취해 담은 특수용기를 들고 있다. NASA 제공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2호 조종사 앨런 빈이 달 표면에 내려 월면토를 채취해 담은 특수용기를 들고 있다. NASA 제공
한국과 미국, 일본이 각각 자체 개발한 월면토. 자기 나라의 암석이나 화산재로 만들어 입자 크기와 색깔이 각기 다르다. 고양=임소형 기자
한국과 미국, 일본이 각각 자체 개발한 월면토. 자기 나라의 암석이나 화산재로 만들어 입자 크기와 색깔이 각기 다르다. 고양=임소형 기자

◇메이드 인 코리아 월면토

미국은 아폴로 우주선을 통해 월면토 약 115㎏을 지구로 가져왔다. 실험에 쓴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NASA에 보관돼 있다. 실험용으로 쓰기엔 부족한 데다 아깝기도 하다. 때문에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은 각자 월면토를 만들어 쓴다. 우리나라도 자체 월면토를 개발했다.

월면토의 성분은 놀랍게도 지구의 화산암이나 화산재와 비슷하다. 이를 근거로 달이 지구에서 분리돼 생겨났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 과학자들은 여러 지역의 암반을 조사한 결과 강원 철원군과 제주, 경기 연천군의 현무암이 실제 월면토와 성분이 가장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중 연구용으로 활용 가능한 연천 현무암을 곱게 갈아 ‘국산 월면토’를 제조했다.

이 월면토가 진짜 달처럼 둥둥 떠 있는 환경을 구현하려면 월면토가 들어 있으면서 진공 상태가 유지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에 건설기술연구원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함께 2016년부터 진공챔버 개발에 들어갔고, 2017년 1단계 제작을 마쳤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4.6~4.7m인 진공챔버에는 월면토가 최대 25톤 들어간다. 월면토가 들어 있는 상태에선 1만분의 1 밀리바(mbar), 없는 상태에선 1,000만분의 1mbar 수준으로 진공을 걸 수 있다. 지구 대기압(1,000mbar)의 100억분의 1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다. 단위 부피 안에 존재하는 기체 분자 수를 헤아릴 수 있는 정도다.

진공챔버 제작의 복병은 ‘탈가스’ 현상이었다. 보통 흙 알갱이엔 물이나 질소, 산소처럼 공기 중에 존재하는 기체 분자들이 달라붙어 있다. 월면토를 진공챔버에 넣고 공기를 빼내다 보면 이런 기체들이 도중에 스멀스멀 떨어져 나온다(탈가스). 이렇게 되면 달과 비슷한 진공 환경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에 과학자들은 월면토를 500~600도에서 ‘구운’ 다음 진공챔버에 넣기로 했다. 굽는 동안 기체들이 열을 받아 흙 표면에서 미리 떨어져 나오게 하는 전략이다.

챔버에서 공기를 빼내는 데도 일반적인 기계식 진공펌프로는 한계가 있다. 기계식은 펌프 자체가 회전하며 공기를 압축해 밖으로 빼내는 방식인데, 이 정도로는 달과 비슷한 고(高)진공 상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공챔버에는 그래서 터보분자펌프와 저온펌프가 추가로 설치됐다. 터보분자펌프는 고속 회전날개를 돌려 챔버 내 기체 분자를 밖으로 튕겨 내보내고, 저온펌프는 영하 약 263도까지 떨어지는 냉각판에 기체 분자를 얼어붙게 해 포집한다. 이들 펌프를 차례로 작동시키며 챔버 내부를 고진공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밀폐된 챔버에 진공펌프를 가동하면 기체 분자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바닥에 깔려 있는 월면토가 일종의 저항 역할을 한다. 월면토 아래쪽 압력이 커지면서 공기가 아래에서 위로 급격히 움직여 흙이 마구 튀어 오르게 된다(교란). 이런 교란 현상을 제어하는 것 역시 정교한 기술력이다.

경기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설치돼 있는 달 환경 진공챔버. 커다란 원(가운데)이 옆으로 밀리면서 열리면 월면토를 채운 사각용기(왼쪽)가 바닥에 깔린 레일을 타고 원통형 챔버 안으로 들어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제공
경기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설치돼 있는 달 환경 진공챔버. 커다란 원(가운데)이 옆으로 밀리면서 열리면 월면토를 채운 사각용기(왼쪽)가 바닥에 깔린 레일을 타고 원통형 챔버 안으로 들어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제공
경기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내 달 환경 진공챔버 제어실. 고양=임소형 기자
경기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내 달 환경 진공챔버 제어실. 고양=임소형 기자
인공 월면토를 전자파로 가열해 만든 건설재료. 단단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고양=임소형 기자
인공 월면토를 전자파로 가열해 만든 건설재료. 단단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고양=임소형 기자

◇달 환경 쏙 닮은 거대한 챔버

진공챔버 제작 2단계에선 영하 190도~영상 150도인 달의 온도를 구현할 예정이다. 흙은 열용량이 크기 때문에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챔버 내부에는 열을 전달할 수 있는 공기가 없다. 흙이 방출한 열을 챔버 표면이 흡수하는 복사 현상도 시간 걸리긴 매한가지다. 과학자들은 그래서 월면토 바닥에 냉각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찬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전달돼 챔버 전체적으로 온도가 떨어지는 효과를 내기 위한 아이디어다.

달과 닮은 진공ㆍ온도 환경이 모두 구현되면 챔버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달 표면을 탐사할 로봇(로버)이 월면토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달 표면을 뚫고 내려가 지반을 조사하는 데 필요한 장비 성능이 괜찮은지 확인할 수 있다. 해외 과학자들의 우주기술 실험에 진공챔버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진공챔버는 내년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건설기술연구원은 월면토를 사용한 건설재료도 만들고 있다. 물이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우주 환경에 풍부한 전자파나 태양열만으로 월면토를 뭉쳐 굳히는 것이다. 인류가 달에 건물을 지을 때 현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역시 진공챔버에서 시험해봐야 한다.

진공챔버 제작에 참여한 정태일 건설기술연구원 전임연구원은 “NASA도 달 환경을 재현한 대형 진공챔버를 내년쯤 완성할 예정”이라며 “우리가 먼저 개발하며 노하우를 쌓고 있는 만큼 관련 기술 연구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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