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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오존구멍, 지구가열, 드로다운

입력
2019.11.26 18:00
수정
2019.11.26 18: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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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70여 나라 관계자들이 HCF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완다의 키칼리에 모였다. 이들은 주목할 만한 합의에 도달했다. 몬트리올의정서를 개정해서 2019년 고소득 국가들을 시작으로 2024~2028년에는 저소득국가까지 HCFs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인류는 마음먹으면 한다. ‘드로다운(drawdown)’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드로다운은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달한 뒤 감소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사진은 지구 온난화로 남극 대륙의 떠 다니는 얼음들.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10월, 170여 나라 관계자들이 HCF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완다의 키칼리에 모였다. 이들은 주목할 만한 합의에 도달했다. 몬트리올의정서를 개정해서 2019년 고소득 국가들을 시작으로 2024~2028년에는 저소득국가까지 HCFs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인류는 마음먹으면 한다. ‘드로다운(drawdown)’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드로다운은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달한 뒤 감소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사진은 지구 온난화로 남극 대륙의 떠 다니는 얼음들. ©게티이미지뱅크

슬그머니 우리에게서 사라진 단어들이 있다. 택시 합승, 무연 휘발유, 지랄탄 같은 것들이다. 택시 합승으로 인한 요금 시비는 영원할 줄 알았다. 이젠 굳이 무연 휘발유와 유연 휘발유로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말로 지랄 같던 지랄탄의 정식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존 구멍과 프레온 가스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잊힌 단어다.

1985년 영국의 남극 탐사대가 남극 대기권의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독일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관측을 통해 오존층 파괴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지상 10㎞ 이상의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자외선의 투과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외선 투과율이 높아지면 동물 세포에 좋을 리가 없다. 우리가 여름에 선크림을 왜 바르겠는가. 피부와 눈에 해롭고 피부종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물 세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면 식물 세포에는 말할 것도 없다. 엽록소가 파괴된다. 광합성이 줄어들고 그 결과 지구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깨진다.

왜 갑자기 오존층이 파괴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인류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1974년 미국 화학자 셔우드 롤런드는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할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멕시코 출신의 화학자 마리오 호세 몰리나와 나중에 ‘인류세’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더 유명한 파울 크뤼천은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세 사람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프레온은 나일론이나 포스트잇처럼 듀퐁사의 상품명이다. 불도저나 크레인처럼 상품명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냥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것이다. 프레온은 메탄(CH4) 분자의 수소(H)가 염소(Cl)와 (예전에 불소라고 하던) 플루오르(F) 원자로 대체된 형태다. 듀퐁사의 상품명 쓰기를 꺼려하는 외국 언론사들은 염화플루오르화탄소라고 하고 간단히 CFCs라고 표기한다. 염소-불소-탄소에 복수형 어미 s가 붙은 것이다. 한 종류가 아니라는 뜻이다.

프레온 가스에 대한 경고가 이미 1974년에 나왔고 1985년에는 실제로 남극에서 심각한 오존층 파괴가 관찰되었어도 당시 사람들은 냉담했다.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병원의 냉동실 냉매가 방출되어 1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흔했지만, 프레온 가스는 이전의 냉매와는 달리 사람에게 해가 없는 기적의 기체였기 때문이다. 발명가 토머스 미즐리는 기자들 앞에서 프레온 가스를 직접 마시는 시연을 했을 정도다. 게다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로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다. 프레온 덕분에 자동차와 가정에 에어컨이 보급될 수 있었다. 당장 생활이 편리해진 사람들이 남극 하늘의 오존층 파괴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역시 네이밍은 중요하다. 1987년 ‘오존 구멍’이라는 말이 생겼다. 일반 시민들조차 CFCs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그 결과 오존층 파괴 물질인 CFCs의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자는 몬트리올의정서가 1987년 제정되고 1989년부터 발효되었다. 그 결과 30여 년 동안 인류가 저지른 지구 환경 파괴의 상징이었던 오존 구멍이 거의 사라졌다. 북반구와 중위대의 오존 구멍은 2030년이면 완전히 복원될 것이다. 남반구의 오존 구멍은 2050년대, 극지방 오존 구멍도 2060년대면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람만 달라지면 지구 환경은 회복된다.

프레온 가스가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냉장고와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 대체 물질을 찾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로 수소화플루오르화탄소(HFCs)를 사용한다. CFCs의 염소(Cl) 자리에 수소(H)가 있는 분자들이다. HFCs는 새로운 기적의 냉매다. 인체에 해가 없고 냉매 효과도 뛰어나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지구온난화라는 따뜻한 표현 대신 요즘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지구가열(Global Heating) 효과가 화학 성분비에 따라서 이산화탄소보다 1,000~9,000배나 더 크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016년 10월, 170여 나라 관계자들이 HCF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완다의 키칼리에 모였다. 이들은 주목할 만한 합의에 도달했다. 몬트리올의정서를 개정해서 2019년 고소득 국가들을 시작으로 2024~2028년에는 저소득국가까지 HCFs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인류는 마음먹으면 한다. ‘드로다운(drawdown)’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드로다운은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달한 뒤 감소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환경운동가 폴 호컨은 기후 변화를 되돌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계획 ‘드로다운’을 제기하면서 우선순위 1위 정책으로 ‘냉매 관리’를 제시했다. 지구가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식량, 수송 문제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시민이라면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지구온난화나 지구가열이라는 단어도 언론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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