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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는 한국 자본주의에 내려진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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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는 한국 자본주의에 내려진 형벌이다

입력
2019.11.07 18:00
수정
2019.11.07 19: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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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선에 출마한 이명박 후보가 강원도의 한 국밥집에서 찍은 선거 광고 한 장면.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는 카피를 내건 광고는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 자본주의를 대변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17대 대선에 출마한 이명박 후보가 강원도의 한 국밥집에서 찍은 선거 광고 한 장면.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는 카피를 내건 광고는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 자본주의를 대변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허름한 국밥집 주인 욕쟁이 할머니의 타박 뒤로 등장한 이 노골적 문구에 혹해, 대한민국은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그를 단번에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배고픈 건 MB만이 아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더 많은 욕망을 무한대로 갈구하는 ‘허기사회’다. MB의 ‘747’ 공약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래줄 사탕발림이었다.

30여권이 넘는 책을 내며 저술과 연구 활동에 전념해 온 사회학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는 MB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인 에리식톤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아 끊임 없이 먹어 치워야 하는 운명에 처한 인물이다. 에리식톤은 그 많던 재산과 외동딸까지 팔아 넘긴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까지 다 뜯어먹고, 이빨만 남아 딱딱거린 채 최후를 맞는다. 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역시 허기를 부정한 방식으로 채우다 몰락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뇌물수수, 비자금 조성 등으로 구속된 MB는 그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인 에리식톤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았다. 길 제공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인 에리식톤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았다. 길 제공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어디서부터 형성된 걸까. 김 교수는 국가, 기업, 개신교의 삼각동맹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먼저 국가. 특히 박정희 정권은 가난을 극복하고 잘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 개인에게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자극했다. 다음 재벌. 건설업으로 개발 한국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도맡았던 현대그룹의 정주영은 핵심 파트너였다. 마지막 한국의 개신교는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이자 전도사였다. 개신교는 경제성장을 신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대가로, 교회 세력을 확장하는 성장의 과실을 공유했다.

김 교수는 MB를 두고 박정희와 정주영, 그리고 ‘조용기주의’로 대표되는 개신교가 융합된 인격체라고 주장한다. 삼각동맹이 구축한 한국 자본주의는 막스 베버가 정의한 ‘자유노동의 합리적인 조직에 기반하는 시민계층적 기업자본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를 국가가 민간을 주도하고 시장에 개입하는 ‘지도 받는 자본주의’라 칭한다.

기형적 한국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유교에 기반한 전통적 집단주의 정신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신교에 대해선 자본주의의 주술사 노릇을 청산하고 영혼의 구원에 헌신해줄 것을 당부한다. 국가는 국가답고, 기업은 기업답고, 교회는 교회다울 때 비로소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에리식톤 콤플렉스

김덕영 지음

길 발행ㆍ266쪽ㆍ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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