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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새처럼 옥담을 넘어(10.31)

입력
2019.10.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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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아일랜드 더블린 마운트조이 감옥 탈옥에 동원된 기종의 알루에트Ⅱ 헬기. 벨기에 브뤼셀 왕립군사박물관
1973년 아일랜드 더블린 마운트조이 감옥 탈옥에 동원된 기종의 알루에트Ⅱ 헬기. 벨기에 브뤼셀 왕립군사박물관

1973년 10월 31일 정오, 아일랜드 더블린 마운트조이(Mountjoy) 교도소 정치범 사동 운동장에 헬기 한 대가 착륙했다. 프랑스산 5인승 알루에트(Alouette)Ⅱ 경헬기에는 기장과 부기장이 탑승해 있었다. 간수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헬기의 출현에 처음엔 당황했고, 일부는 고위층에서 불시 시찰을 나왔나 여겼다고 한다. 운동장을 돌던 죄수들이 그 순간 간수들을 에워싸는가 싶더니 무리 중 세 명이 헬기를 향해 달렸다. 그들을 태운 헬기는 곧장 이륙해 철조망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이 든 간수 한 명이 “정문 닫아”라고 외쳤다는 설이 있다.

아일랜드 분단, 즉 북아일랜드의 영연방 편입과 남아일랜드 자유국 독립에 반대하며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를 상대로 무력 투쟁을 펴던 공화국군 임시파(PIRA) 군 참모장 세이머스 투미(Seamus Twomey, 1919~1989) 등 3명이 그렇게 탈옥했다.

PIRA의 무장 투쟁이 치열하던 때였다. 아일랜드는 국가방위법 등에 근거해 재판 없는 구금과 배심원 없는 특별재판으로 PIRA를 진압했다. 73년 그 무렵 1,400여명의 PIRA 대원이 정치범으로 수감됐고, 그중 5년 형을 선고받은 투미 등 지도부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탈옥은 사기를 넘어 PIRA의 존폐를 가를 수 있는 작전이었다.

하루 전인 30일, 미국 억양의 레너드(Mr. Leonard)라는 남자가 더블린 공항 아이리시 헬리콥터사를 찾아가 헬기를 대여했다. 영화 촬영 전 항공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게 그가 밝힌 대여 목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헬기에 탑승한 그는 기장에게 촬영 장비를 실어야 한다며 남서쪽 스트래드발리(Stradbally)의 한 공터에 잠시 내려달라고 청했다. 헬기가 착륙하자 근처 숲에서 두 남자가 총을 들고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이 헬기에 탑승, 기장을 협박해 마운트조이 교도소로 향했다. 레이더를 피해 저고도 비행을 고수했다.

탈옥은 그렇게 단숨에, 평화적으로 성공했다.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투미는 독일 ‘슈피겔’지와 회심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포크 그룹 울프 톤스(Wolfe Tones)는 한 달 뒤 그 사건을 소재로 가사를 쓴 행진곡풍 노래 ‘Up and Away(The Helicopter Song)’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그의 앨범은 당국의 필사적인 음반 판매ㆍ방송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4주 동안 아일랜드 싱글차트 1위를 지켰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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