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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하려다 입장료만 올리는 '마지막 공룡들의 섬'

입력
2019.10.17 04:40
수정
2019.10.17 08: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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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14> 코모도국립공원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낸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와 청록 바다.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낸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와 청록 바다.

그 섬에 갔다. “내년에는 갈 수 없다”고 올 초부터 현지 매체와 외신이 여러 차례 떠든 터라 서둘렀다. 정작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폐쇄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방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를 들이대도 고개를 저었다. 섬을 떠난 사흘 뒤인 지난달 30일 공교롭게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섬 임시 폐쇄 결정, 철회’를 발표했다. 기사 방향이 틀어져서 허탈했고, 취재 내용이 맞아서 다행이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파다르섬 산중턱에서 바라본 분홍(왼쪽 위) 검정(왼쪽 아래) 하얀색(오른쪽) 3색 모래 해변.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파다르섬 산중턱에서 바라본 분홍(왼쪽 위) 검정(왼쪽 아래) 하얀색(오른쪽) 3색 모래 해변.

기실 그 섬은 취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는 별호를 받들고 누리면 족하다. 은옥색이 희롱하는 청록 바다, 세상에 일곱 군데밖에 없다는 가슴 황홀한 분홍 모래톱(핑크비치ㆍPink Beach), 영혼이 흔들리는 황금 별빛은 단언컨대 글로 온전히 풀어낼 수 없다. 대자연의 자태 역시 보호해야 하지만 섬의 폐쇄 여부를 쥐락펴락한 존재는 따로 있다. ‘지구상 마지막 공룡’이라 불리는 멸종 위기 생명체, 코모도왕도마뱀(Komodo Dragon)이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 위치 및 여행 지점. 그래픽=김문중 기자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 위치 및 여행 지점. 그래픽=김문중 기자

화산 폭발로 생성된 코모도, 린차(Rincaㆍ198㎢), 파다르(Padar) 주요 섬과 26개의 작은 섬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은 세계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이 서식하는 유일한 곳이다. 우리나라 거제도 크기(379㎢)의 코모도섬(390㎢) 일대는 1980년 인도네시아 국립공원으로,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코모도섬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2시간30분 정도 날아가 동(東)누사텡가라주(州)의 항구도시 라부안바조에 일단 짐을 부려야 한다.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선 배로 하루가 꼬박 걸린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대왕쥐가오리(manta) 출몰지점.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대왕쥐가오리(manta) 출몰지점.

코모도섬 일대를 여행하려면 온종일 보트를 타고 각 섬을 돌거나, 며칠씩 돛단배에 묵어야 한다. 교통비도, 숙박비도, 국립공원 일주 여행상품도 비싸다. 라부안바조 항구 일대에 즐비한 현지 여행사에서 흥정하면 좀더 저렴한 상품을 구할 수 있지만 돈을 아낀 만큼 이동 시간이 더 걸린다. 일정은 코모도왕도마뱀 탐방(코모도섬 또는 린차섬), 파다르섬 트래킹, 코모도섬 핑크비치, 대왕쥐가오리(manta) 출몰지점 스노클링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초기지인 라부안바조의 해안 풍경.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초기지인 라부안바조의 해안 풍경.

코모도 여행의 전초기지인 라부안바조는 커피와 향신료의 일종인 정향을 일부 재배하고 어업도 하지만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험한 땅이라 주민들은 대개 관광업으로 먹고산다. 코모도섬 폐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내년 1월부터 1년간 폐쇄’라는 지방 정부 결정이 엄연히 살아있는데도, 모두 심드렁하거나 덤덤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표지판.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표지판.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택시기사 시아프리스(42)씨는 “폐쇄 얘기는 들었지만 그리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고, 국립공원 지킴이(ranger) 피에르만(23)씨는 “현재도 코모도섬보다 가깝고 코모도왕도마뱀을 보다 쉽게 볼 수 있는 린차섬으로 많이들 간다”고 했다. 여행 길잡이(guide) 삼순(27)씨는 “폐쇄 가능성은 50%정도지만 중앙 정부가 주민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올 초만 해도 폐쇄 쪽으로 기울었던 인도네시아 산림환경부는 지방 정부의 섬 폐쇄 및 섬 주민 이주 결정(7월)을 두 달 만에 뒤집었다. “조상 무덤을 두고 어디를 가나” “굶어 죽으라는 얘기냐”는 코모도섬 주민 2,000명의 호소가 어쨌든 먹힌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 낮엔 공원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 낮엔 공원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섬 폐쇄 계획은 올 초 마리당 3만5,000달러(약 4,200만원)에 해외로 팔려나간 코모도왕도마뱀 41마리 밀반출 사건 탓에 단단해졌다. 여기에 코모도왕도마뱀의 먹이인 사슴 멧돼지 물소(버펄로)마저 밀렵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매달 1만명이 넘는 관광객 방문으로 인해 코모도왕도마뱀의 짝짓기와 부화 과정이 방해를 받는다는 명분이 더해졌다. 내친김에 다 자라기 전 코모도왕도마뱀 새끼가 머무는 나무도 더 심자고 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사슴들. 코모도왕도마뱀의 먹이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사슴들. 코모도왕도마뱀의 먹이다.

코모도섬보다 라부안바조에서 가까운 린차섬에도 비슷한 숫자(1,000여마리)의 코모도왕도마뱀이 살고 있어서 섬 상륙이 아니라 코모도왕도마뱀 탐방이 목적이라면 굳이 코모도섬에 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린차섬이 관리가 더 잘되고 있었다. 애초부터 코모도섬 폐쇄 계획은 올해 반드시 가지 않으면 주변 관광을 못할 정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입구. 공원 안 곳곳에 코모도왕도마뱀이 어슬렁거린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입구. 공원 안 곳곳에 코모도왕도마뱀이 어슬렁거린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10년 이상 코모도왕도마뱀의 안정적인 개체 수 유지’를 계획 변경의 이유로 내세우면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슬그머니 올릴 계획이다. 1,000달러(120만원)짜리 연간 회원제, 입장료 50배 인상 얘기도 흘러나온다. 특히나 코모도에 매료된 서양인들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 라부안바조 거리와 리조트를 메운 관광객은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관광객 17만6,000여명 중 95%가 외국인이었다. 그나마 코모도왕도마뱀 연구센터 설립, 국립공원 지킴이 장비 및 훈련 개선 소식은 반갑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

인간들이 섬 폐쇄를 놓고 옥신각신하든 말든 코모도왕도마뱀들은 섬 곳곳을 나른하게 어슬렁거렸다.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낸 코모도섬의 핑크비치와 다채로운 바다 빛깔, 파다르섬 산 중턱에서 바라본 분홍 검정 하얀색의 3색 모래 해변은 날 것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내년에도 기회가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 일생에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다. 여행 길잡이 프레딕(22)씨는 “코모도의 모든 것을 만끽하려면 4~10월(건기)이 적기”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 모래.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 모래.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냈다.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낸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 껍질 알갱이가 빚어낸 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의 핑크비치.
인도네시아 동누사텡가라주의 항구도시 라부안바조 한 리조트에서 바라본 코모도국립공원 풍경.
인도네시아 동누사텡가라주의 항구도시 라부안바조 한 리조트에서 바라본 코모도국립공원 풍경.

라부안바조ㆍ코모도국립공원=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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