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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 때가 있다

입력
2019.10.1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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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식약처에서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를 내렸을 때 누구는 ‘성급하다’ 했고, 누구는 ‘늑장 대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라니티딘’ 성분을 사용한 위장약에서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그 타이밍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잔탁’ 모습. 연합뉴스
작년 식약처에서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를 내렸을 때 누구는 ‘성급하다’ 했고, 누구는 ‘늑장 대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라니티딘’ 성분을 사용한 위장약에서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그 타이밍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잔탁’ 모습. 연합뉴스

나는 어공이다. ‘어쩌다 공무원’이란 뜻이다. 조직 생활이라고는 25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했던 광고회사 생활이 전부다. 박사 학위를 받고 15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연구년을 맞은 참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 더 유익한 연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기회가 온 것이다. 타이밍이 좋았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도 혼기를 놓치면 못 하기 십상이고, 승진도 때가 와야 한다. 보고의 고수가 쓴 책 ‘고수의 보고법: 상사의 마음을 얻는 보고의 기술’에 따르면 보고의 타이밍은 보고서 작성 기술만큼 중요하다. 상사가 막 출근해 숨도 돌리기 전에, 점심 먹고 양치질도 하기 전에 보고서를 내민다면 보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언제가 적절한 ‘때’인지를 아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식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격이 낮을 때 사서 가격이 높을 때 팔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식 가격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더 높아진다는 기대감에 주식을 사고 주가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불안감에 팔아버린다. 남 얘기가 아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고, 나 역시 오래전 같은 경험을 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다니엘 핑크는 그의 저서 ‘언제 할 것인가: 쫓기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는 타이밍의 과학적 비밀’에서 700여편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루를 효과적으로 재배치하는 법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집중하고 분석해야 하는 일은 오전에,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메일 확인이나 서류 분류 등의 업무는 오후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운동도 목적에 따라 타이밍을 다르게 한다. 살을 빼려면 아침 일찍, 근육을 키우려면 저녁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수술 역시 오전에 해야 실패율이 낮다.

‘언제’라는 질문은 삶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어느 신문 칼럼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성공과 실패 등 삶의 문제는 ‘누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했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성공한 사람도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위기 대응에서도 타이밍이 생명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위기의 내용과 행동 요령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은 위기 대응의 핵심이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소통해야 신속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위기 대응 소통이 어려운 이유다. 작년에 식약처에서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를 내렸을 때 누구는 ‘성급하다’ 했고, 누구는 ‘늑장 대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라니티딘’ 성분을 사용한 위장약에서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회수 조치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그 타이밍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 ‘언제 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라니티딘 제품 회수 조치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했다. 전 세계 17개국이 비슷한 조치를 했고, 그 수는 늘고 있다. 모두 국민의 안전을 위한 예방적 조치라는 원칙을 한결같이 내세웠다.

지난 추석 직원들에게 작은 목욕용품 세트를 선물했다. 선물상자 밖에는 ‘넌 내게 목욕감을 줬어’, 비누상자에는 ‘이게 다 거품이야,’ 때수건에는 ‘다 때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재치 있는 선물세트였다. 늘 고생하는 직원들이 한번 유쾌하게 웃을 수 있기를, 다만 문구의 의미는 가슴 깊이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른 선물이었다. “다 때가 있다”는 문구를 특히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타이밍의 중요성을 말이다. 때를 기다리고, 기회가 올 때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때를 잡아서 어공이 된 나처럼 말이다.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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