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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운명적 인연’에 대하여

입력
2019.10.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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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그럴만한 운명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우주적 동작이다. 그런 만남은 우주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그럴만한 운명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우주적 동작이다. 그런 만남은 우주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쓴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행자가 길을 가다가 무거운 수레가 뒤집혀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수레를 몰고 가던 농부는 여행자에게 수레를 들어 올리는 것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여행자가 보기에는 수레가 너무 무거워 두 사람의 힘으로 들어 올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해봤자 안될 거요. 난 못하겠소.” 그러자 농부가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아주 잘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거요. 그게 바로 당신의 본 마음이요.” 이 말을 듣자니 여행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농부를 돕기 시작했다. 널빤지를 바퀴 아래에 집어 넣고 지렛대를 이용하여 힘껏 수레를 들어 올렸다. 마침내 뒤집힌 수레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수레는 소에 이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농부와 여행자는 묵묵히 함께 걸었다. 여행자가 물었다. “왜 당신은 내가 돕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당신이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냥이라니. 정말 그냥 그렇게 생각했단 말입니까?” “아 참 그 양반. 정말 알고 싶소? 내가 당신을 보았을 때 누군가 당신을 보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을 돕게 하려고 수레가 뒤집혔단 말이요?” “그렇지 않다면 왜 수레가 뒤집혔겠소. 친구?”

이 말에 너무 공감이 되어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그럴 만한 운명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우주적 동작이다. 그런 만남은 우주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평생 같은 지역에서 살아도 인연 아닌 사람이 있고, 잠시 눈빛만 마주쳤는데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인 사람이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운명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그 인연으로 맺어진 운명이다. 당신이 그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은 수많은 인연과 운명의 장치들이 미리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없다. 이런 운명적 인연에 의해 특별해질 뿐이다. 지금 눈앞의 낯모르는 사람이 피를 콸콸 쏟는다 해도 몇 분 후면 당신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가 고개만 조금 숙여도 당신의 가슴은 미어질 것이며,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당신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행운, 운명, 인연, 우연은 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하기 싫을 때 사용하는 신의 가명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연, 행운, 운명, 인연을 믿는다. 젊었을 때는 노력과 의지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고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똑같이 출발한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도 이 나이가 되면, 모두 제각각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분명 운명과 인연이다. 인생이 풀려 나갈 때도 어디선가 행운이나 운명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운명이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은 배반하지 않는다. 운명은 순식간에 변하면서 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모든 것이 바뀐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맺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행운이고 축복이다.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윤경 더리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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