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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복면금지법 할 테면 해봐”… 홍콩 시위대, 각양각색 가면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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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복면금지법 할 테면 해봐”… 홍콩 시위대, 각양각색 가면 맞불

입력
2019.10.06 18:31
수정
2019.10.06 23:4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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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법’ 발동 이틀째, 궂은 날씨에도 시민들 거리 가득

“사실상 계엄령” 격분… 친중파 은행ㆍ상점 공격 늘어

6일 홍콩 시내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쓴 시위대가 완차이에서 차터가든 방향으로 행진하며 당국의 긴급법 발동과 복면금지법 시행을 규탄하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6일 홍콩 시내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쓴 시위대가 완차이에서 차터가든 방향으로 행진하며 당국의 긴급법 발동과 복면금지법 시행을 규탄하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복면금지법은 정부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만 낸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줄 겁니다.”

6일 낮 홍콩 코즈웨이베이 소고(SOGO) 백화점 앞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5살, 1살짜리 남매를 데리고 참가한 주부 심(26)씨는 단호했다. 그는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복면금지법을 시행하면 화이비(和理非ㆍ평화 이성 비폭력) 시위대가 줄어들 거로 생각한 것 같다”며 “그럴수록 나는 마스크를 챙겨 쓰고 더 열심히 시위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거대한 인파와 소음에 놀란 아이들이 토끼 눈을 하고 칭얼대기 시작하자 심씨는 능숙하게 다독이면서 “지금 홍콩 사회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아이들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공공장소와 집회에서 마스크 착용을 전면 금지한 ‘복면금지법’ 시행 이틀째인 이날 홍콩 시민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홍콩섬 코즈웨이베이와 카오룽(九龍)반도 침사추이로 나뉘어 대규모 정부 규탄 행진을 벌였다. 당초 코즈웨이베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두 결집할 예정이었지만, 이날까지도 홍콩 지하철(MTR) 대다수 노선이 폐쇄되거나 지연 운행되면서 급히 침사추이 집회 일정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계엄령으로 통하는 ‘긴급법’ 발동에 분노한 시민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일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6일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홍콩시위대 각양각색의 복면. 홍콩=AP.AFP.로이터 연합
홍콩시위대 각양각색의 복면. 홍콩=AP.AFP.로이터 연합

집회 시작 한 시간 전인 낮 1시가 되자 소고 백화점 앞은 검은색 옷을 입은 시민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참가자는 대부분 10~30대 사이의 젊은 층으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그 중 한 명인 대학생 유(18)씨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고 왔다”라며 “위험한 상황이 생겨도 친구들과 함께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전민 마스크 착용 시위’라는 집회 이름에 맞게 거의 모든 참가자가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혁명과 저항을 상징하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참가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복면무죄, 입법무리’라고 쓴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사람도 보였다.

행진 전 한 참가자의 선창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구호 제창이 시작됐다.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 “6대 요구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경찰해산 1초도 기다릴 수 없다!” “10월 1일(중국 건국일) 국경(國慶)은 없고 국상(國喪)만 있다!” 등 구호와 시위 주제곡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이 코즈웨이베이 번화가 골목골목에서 울려 퍼졌다. 지난 4개월간 이미 익숙하게 들었던 레퍼토리다. 다만 “홍콩시민 파이팅!”이라는 구호가 “홍콩시민 저항!”으로 대체됐다. 참가자들은 “’복면금지’ 긴급법 발동 이후 고조된 시위대의 분노가 구호에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당국의 긴급법 발동은 성난 시위대에 기름만 끼얹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4일 정부 발표 직후부터 이틀 사이 시위 선봉에서 무력 충돌도 마다하지 않아 온 용무파(勇武派) 시위대의 저항이 눈에 띄게 격해졌다. MTR 역사에 불을 지르고, 중국계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부수는 식이다. 건물과 거리는 이들의 캔버스가 된 지 오래다. 시내버스나 트램 정류장, 고가, 건물 외벽 등에는 ‘공무원은 개’ ‘복면은 죄가 없다’ ‘차이나치(중국과 나치의 합성어)’ 등의 그라피티 낙서가 여기저기 휘갈겨져 있었다.

시위대의 방화로 훼손된 홍콩 MTR 코즈웨이베이역 입구에서 6일 다른 시위 참가자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글씨를 써붙이고 있다. 바로 옆 벽면에는 스프레이식 물감으로 '복면은 죄가 없다'는 그래피티를 써놨다. 홍콩=강유빈 기자
시위대의 방화로 훼손된 홍콩 MTR 코즈웨이베이역 입구에서 6일 다른 시위 참가자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글씨를 써붙이고 있다. 바로 옆 벽면에는 스프레이식 물감으로 '복면은 죄가 없다'는 그래피티를 써놨다. 홍콩=강유빈 기자

시위대가 복면금지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정부가 이번 조치를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응원 포스터를 나눠주던 종교인 슈(68)씨는 “긴급법 발동을 기점으로 친중 은행과 상점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는 등 시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금은 마스크만 금지시켰지만 이 뒤에 또 어떤 강압적인 조치들이 이어질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를 용무파라고 소개한 회사원 스테파니(24)씨도 “복면금지법은 에피타이저(식전 음식)일 뿐”이라며 “이번 조치에 맹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정부는 아무렇지 않게 더 심한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시위대의 폭력적인 저항을 옹호했다.

이날 행진은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지만, 오후 5시쯤부터 경찰이 최루가스를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서며 급격히 험악해졌다. 카오룽 반도 집회에서는 몽콕 경찰서 앞에서, 홍콩섬 집회에선 완차이역에서 무장경찰이 수 차례 최루가스를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흥분한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벽돌을 던지며 저항했고,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친 뒤 불을 질러 일대 차량 통행이 마비되기도 했다. 친중파 은행과 상점을 겨냥한 약탈과 공격도 계속됐다. 그 밖에 화염병에 맞은 홍콩 라디오텔레비전(RTHK) 기자 몸에 불이 옮겨 붙고 시위대 속으로 차를 몰다 붙잡힌 택시기사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등 아비규환의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6일 홍콩 완차이역 인근에서 무장경찰이 반정부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위에서 눌러 제압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6일 홍콩 완차이역 인근에서 무장경찰이 반정부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위에서 눌러 제압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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