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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들만의 출판기념회

입력
2019.10.03 04:40
수정
2019.10.03 07:5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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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무소속 이언주 의원의 '나는 왜 싸우는가' 출판리셉션에 참석해 이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무소속 이언주 의원의 '나는 왜 싸우는가' 출판리셉션에 참석해 이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되면서 출판기념회라는 것도 몇 차례 참석하게 되었다. ‘기념회’라고 하니 사회적 관습이나 업계의 원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호텔 같은 곳에서 스테이크를 곁들이며 클래식 연주로 출간을 기념하기도 한다. 누구는 허름한 선술집에서 아는 작가 몇몇을 불러 모아 술잔을 기울일 따름이다. 어떤 작가는 원고를 집필했던 책상에 앉아 막 나온 책을 정독함으로써 출간기념회를 대신한다고 한다. 다른 누구는 책을 들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의 바다나 공원 같은 데서 책을 들고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요즘은 독자를 모아 북토크를 하거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방송을 하며 출간을 알리는 경우도 많다.

어떤 책이든 저자에게는 소중한 결과물일 테고, 그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자리에 경중은 없을 것이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물론이고 실용서와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수만 종의 책 대부분은 저자의 인생과 공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책이 세상에 나왔음을 자축하고 기념하며, 주위에 알리는 것은 어찌 보면 저자로서의 당연한 책무일 수도 있다.

그 책무를 가장 뻔뻔스레 잘해내는 직군은 아무래도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역대 대통령에서부터 구청장이나 지방의회 의장에 이르기까지, 그들 중에 저자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인터넷 서점에 아는 국회의원 이름 아무개를 치면 열에 아홉은 그가 저자인 책이 나온다. 예컨대 전 국회의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2007년 ‘나의 접시에는 먼지가 끼지 않는다’라는 책을 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같은 해에 낸 책의 제목은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이해찬’이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나는 왜 싸우는가’를 올해 7월에 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라는 책의 저자이며,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정치 일선에 나서기 직전에 낸 책 제목은 무려 ‘황교안의 답’이다. ‘문재인의 운명’ 등 문재인 대통령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최근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이라는 책을 내며 정계 복귀의 뉘앙스를 풍겼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출판기념회라는 것을 꼭 한다.

물론 책은 한 사람의 사유와 태도, 가치관과 철학을 가잘 잘 드러내 주는 수단이기에 정치인의 출간이 잦은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나온 책을 기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한 많은 책들은 만듦새가 조악하여, 서점에 내놓고 독자를 찾는 용도인지 갸웃거리게 만든다. 나랏일로 바쁠 정치인이 어찌 짬을 내어 긴 원고를 집필했는지도 알 수 없다. 출마를 위한 경선이나 본 선거에 나설 참이거나, 본인에게 이슈가 집중될 때마다 공교롭게 책이 나오는 타이밍도 못내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되도록 멀리 알려야 할 정치인이 텔레비전도 아니고 유튜브도 아닌 출판에 이토록 공들여 나서야 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정답은 아마도 ‘정치자금법’일 테다. 출간기념회에서의 모금은 정치자금법에서 자유롭다. 액수와 횟수에 제한이 없고, 따로 신고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회 기념회에 얼마나 걷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위기인 출판이, 정치인에게는 노다지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출판은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을 낸 그들 모두 넓게 보아 출판인인데, 여야와, 지방정부와 청와대 등지에 출판인이 이토록 차고 넘치는데 출판 관련 정책의 입안은 어째 이리 지지부진한가 말이다. 혹시 그들이야 말로 ‘고스트 라이터’, 즉 가짜 작가는 아닐는지. 합리적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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