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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K TV 논쟁’에 사용자는 없다

입력
2019.10.03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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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K TV의 화질 우수성에 관한 양사의 논쟁은 과거 3DTV에 대한 양사의 대립과 흡사한 모습이다. 자칫하면 기술적 우수성에만 편향된 판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에 큰 손실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사진은 1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전자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LG전자 직원이 8K TV 제품들의 해상도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8K TV의 화질 우수성에 관한 양사의 논쟁은 과거 3DTV에 대한 양사의 대립과 흡사한 모습이다. 자칫하면 기술적 우수성에만 편향된 판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에 큰 손실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사진은 1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전자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LG전자 직원이 8K TV 제품들의 해상도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현재 벌어지고 있는 8K TV 관련 LG와 삼성의 갈등을 보면서 2013년 벌어졌던 양사 간의 3DTV 관련 논쟁이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양사의 3DTV 기술 논쟁은 사용자에게 무의미하다고 기고한 적이 있다. 주된 이유는 3DTV 시청 경험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시각 경험에 부합하지 않으며, 시각 경험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 없이 공학적 우월성에만 기반한 기술 혁신은 사용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투고 이후 3DTV에 대한 수요는 점차 감소했으며 2015년 이후에는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8K TV의 화질 우수성에 관한 양사의 논쟁은 과거 3DTV에 대한 양사의 대립과 흡사한 모습이다. 즉 사용자 경험보다는 8K 방식 중 어떤 것이 기술적으로 우월한지에 대한 공학적 논쟁의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기술적 우수성에만 편향된 판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에 큰 손실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용자 경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스탠퍼드대의 리브스 교수는 화질보다는 화면의 크기가 몰입도, 호감도, 각성의 측면에서 사용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똑같은 화질의 TV라 하더라도 음질의 차이에 따라 사용자들의 화질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가 달라짐을 밝혔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인간 진화의 결과로 설명한다. 즉, 인간의 시각 경험은 선명도는 낮지만 더 많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는 ‘주변시(周邊視)’를 통해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상들을 빠르게 파악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으며, 이것만으로 파악되지 않는 잠재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민감한 청각 기관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시각 경험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잘 응용한 기술 혁신의 사례는 약 15년 전 출시됐던 필립스의 앰비라이트 TV이다. 앰비라이트는 TV 테두리에 근접한 콘텐츠의 색을 테두리에 두른 조명을 통해 화면 밖으로 투사하는 기술이다. 밖으로 투사된 테두리 색은 화질은 낮지만 실제 화면크기보다 훨씬 더 큰 화면을 보는 듯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 이 혁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2004년 출시 당시 필립스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은 7%정도였으나 2006년에는 약 13%로, 2년 만에 거의 2배로 커졌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화면 크기 외에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은 음질, 화면 비율, ‘폼 팩터’(form factorㆍ기기 형태) 등을 들 수 있다. 고급 자동차 운전 경험에서 오디오의 중요성, 애플이나 삼성전자의 고급 오디오 전문회사 합병 사례들은 미디어 경험에서 음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화면 비율의 경우 수평각이 더 넓어지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 시각 시스템은 넓은 수평각을 통해 수평상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생존 위협 요소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진화되었다. 우리가 16대 9 비율의 TV를 보다가 예전 4대 3 TV를 보면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향후 TV를 포함한 디스플레이 기기의 화면 비율은 21대 9와 같이 수평각이 넓어지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폼 팩터의 혁신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 출시된 폴더블폰은 사용 시에는 크고 휴대 시에는 작은 형태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상반된 욕구를 폼 팩터 혁신으로 충족시켰다. 사용하지 않을 경우 보이지 않게 말아버리는 롤러블 TV나, 용도에 따라 다양한 사이즈나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같은 폼 팩터 혁신이 기대된다.

과거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의 해상도를 중심으로 경쟁할 때, 기울어가던 닌텐도가 사용자 동작을 화면 속 아바타가 똑같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컨트롤러를 개발, 놀라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 ‘닌텐도 위’를 출시해 순식간에 시장을 석권한 사례가 2006년에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8K TV 화질에 집중하고 있을 때 외국의 경쟁업체에서 다른 혁신 지점을 발굴해 TV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의 TV제조사들이 사용자 경험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의 발굴과 혁신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관민 난양공대 뉴미디어 한국재단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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