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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이날이 시월상달 초사흘이니(10.3)

입력
2019.10.03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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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상달의 세시 풍속 중 하나인 동제 모습. cha.go.kr
10월 상달의 세시 풍속 중 하나인 동제 모습. cha.go.kr

국학자 위당(爲堂) 정인보(1893~1950)가 지은 ‘개천절’ 노래 2절 가사에는,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열린 이날이 시월상달 초사흘이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1909년 나철이 개종(開宗)한 민족종교 대종교의 노래였다가 국경일 기념가가 됐다. 곡은 친일 이력이 있는 ‘산유화’의 작곡가 김성태가 지었다.

대종교가 설명하는 ‘개천(開天)’이란 천신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의 업을 펴기 위해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온 날이다. 그게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이다.

‘상(上)달’이란 말 그대로 1년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높고 특별한 달이다. 인간이 신(神)에게 나아가 제(祭)를 올리는 달, 인간과 신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는 신성한 달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은 고대에서부터 음력 시월을 ‘양월(良月)’이라 했고, 일본은 ‘신월(神月)’이라 했다고 한다. 동예의 ‘무천’이나 고구려 ‘동맹’, 고려의 ‘팔관재’ 같은 왕실 차원의 제천의례가 모두 상달에 거행됐고, 마을 단위의 동제(洞祭)와 가문의 가신제나 성주굿, 무당이 주관하는 도당굿 대동굿 별신제, 제관이 이끄는 유교식 동제가 하나같이 상달의 일이었다. 그중 ‘초사흘’은 상달의 가장 큰 날,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

저 모든 의식(儀式)과 의식(意識)의 바탕에는 물론 농경 파종-수확의 순환이 있다. 서구의 11월 추수감사절이 동양의 음력 시월 상달이고, 디즈니 영화 ‘코코(Coco)’로 알려진 죽은 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이들 곁에 머무는 날이라는 멕시코 인들의 명절 ‘사자의 날(Day of the Dead)’도 상달(10월 31일) 안에 있다. 멕시코의 위도는 한반도보다 조금 낮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경일 ‘개천절’은 환웅이 하늘의 문을 연 날이 아니라, 환웅이 웅녀와 낳은 아들 단군이 B.C. 2333년(단기 원년)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다. 신화나 설화를 두고 날짜와 기원을 따지는 건 우습고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이왕 기념할 거면 나라를 세운 날보다는 하늘 문을 연 날을 기념하는 게,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더 그럴싸해 보인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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