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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우와 여히 수여함’

입력
2019.09.2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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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근이 경부 문경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8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백두장사(140kg이하)에 등극한 뒤 우승트로피와 인증서를 들고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서남근이 경부 문경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8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백두장사(140kg이하)에 등극한 뒤 우승트로피와 인증서를 들고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추석 연휴에 우연히 텔레비전 중계로 씨름대회를 보게 되었다. 가장 높은 체급의 백두장사 경기가 조금은 싱겁게 끝난 후 우승자가 화려한 옷을 걸치고 꽃마차를 탄 채 행진을 시작했다. 화면에는 상패와 백두장사 인증서가 나왔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놓은 글자를 보니 무슨 씨름대회에서 백두장사가 되었음을 밝히는 내용의 상장이었다.

그런데 인증서에서 ‘우와 여히 수여함’이라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순간 ‘도대체 무슨 말이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우(右)와 여(如)히 수여(授與)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쉬운 말로 풀면 ‘오른쪽과 같이 드림’의 뜻이다. 더 편하게 쓰자면 ‘이와 같이 드림/드립니다’에 해당한다.

왜 저리도 어렵게 쓴 것인지 아쉬움을 느껴서 예전의 씨름대회 인증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는데, 2년 전 대회의 인증서는 우리말 조사 정도를 빼고는 내용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는 점이다. 곧 ‘우와 여히 수여함’이 ‘右와 如히 授與함’으로 적혀 있었다. 씨름대회 이름도, 주는 사람 이름도 온통 한자였다. 재미있는 점은 ‘씨름協會’처럼 ‘씨름’은 한글로 적었는데, 한자어 ‘각력(角力)’, ‘상박(相撲)’으로 바꿔 쓰지 않아 다행이다.

100년도 더 넘은 ‘국한혼용체’가 아직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는 점은 씨름을 젊은 감각의 국민들에게서 더 멀어지게 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한자 표기를 한글로 바꾼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와 같이 인증서를 드립니다’라는 쉬운 말을 쓸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한민족의 전통 경기인 씨름이 젊은 세대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경기 규칙에 대한 개선과 함께 이런 언어 사용 문제에서도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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