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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의사의 목소리가 국민에 닿으려면

입력
2019.09.2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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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인숙(앞줄 오른쪽)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삭발을 한 후 황교안(왼쪽) 대표의 격려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숙(앞줄 오른쪽)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삭발을 한 후 황교안(왼쪽) 대표의 격려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의사인데 조 장관은 정신병이 있다” “정신병 환자가 자기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 정신병이 아니다”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6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난하며 내놓은 발언이다. 의사 출신인 박 의원은 다음날도 조 장관에 대해 “인지능력 장애” “정신상태 이상” “과대망상증”이라고 막말을 이어 갔다. 이튿날 대한의사협회 회장 출신인 같은 당 신상진 의원이 한 마디 보탰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빨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정신감정 받으시라”고 말한 것이다. 모두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비정상이라 낙인 찍고 비하하는 표현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다. 다른 만성질환으로 평생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정신병자’라며 비하하고 모욕한다. 이런 편견을 알기에 정신질환자들은 질병을 숨기려 한다. 초기에 상담이나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계속 커져 간다. 결국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악화한 후에야 주변 사람에 의해 입원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의사라면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직업도 아닌 의사 출신 의원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하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을 보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인다.

어쩌면 이런 막말은 그들이 의사 시절 환자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자에게 의사는 자기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에게 환자를 우습게 생각하거나 비하해도 되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인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15년 동안 환자들을 대변하는 활동을 해 온 안기종 씨는 의사들끼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눈 댓글 대화에서 심한 욕설이 섞인 모욕을 당한 적 있다(관련기사). 의협은 기자회견 발언을 문제 삼아 안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법원은 안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의협은 힘 없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소송을 걸면서 비윤리적 의사에 대한 제재에는 눈감고 있다. 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었고 간호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정신과 의사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진작 제명했지만 의협은 중앙윤리위원회에 올린 후 1년 반이 지나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 의사는 아직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오래 전 의약 분업 때부터 의사단체의 ‘투쟁’이 매번 국민에게 외면 받아 온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필수의료 수가가 낮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꼭 필요한 진료를 해도 삭감한다 주장해도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단식을 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총파업을 하겠다고 하면 분노한다.

반면 아주대 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가 1년 전 펴낸 저서 ‘골든아워’를 읽은 독자들은 그가 지적한 의료제도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단순히 어떤 이동 수단으로 환자를 싣고 오는지에 의해서도 사람의 생사가 갈릴 수 있구나. 의료적으로 필요한 진료를 했는데도 심평원이 진료비를 삭감하는 경우가 있구나. 외과 수술에 대한 수가가 형편 없어서 사람을 살릴수록 병원이 손해를 입는구나. 의사단체가 비슷한 말을 했을 때 외면했던 사람들도 문제점을 인식했다. 정부와 병원 측에 외상외과 분야에 대한 투자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언론 기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환자들이 모든 의사에게 이 교수와 그의 외상센터 팀 같은 희생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환자가 자신의 목숨을 맡긴 의사로부터 존중 받는다고 느낄 때에야, 의사라는 직업군이 숭고한 소명만큼이나 깊은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인식했으면 한다. 그런 때 비로소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자는 목소리도 국민에 가 닿을 것이다.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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