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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당신은 해고야!”

입력
2019.09.18 18:30
수정
2019.09.18 19: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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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주 리오 랜초 유세장에서 한 지지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앞에서 엄지를 치켜 세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오 렌조=A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주 리오 랜초 유세장에서 한 지지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앞에서 엄지를 치켜 세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오 렌조=AP연합뉴스

미국의 유명 방송기획자 마크 버넷(59)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군 제대 후 22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 학력 수준도 낮고 기술도 없었던 버넷은 한 부잣집의 남자 유모 겸 경호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가 거리에서 티셔츠를 팔며 돈을 모았다. 그는 지원자들의 생존 대결을 그린 프랑스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TV 리얼리티 쇼의 사업성을 알게 됐다. 프랑스 리얼리티 쇼의 판권을 사 방송 사업에 뛰어든 후 미국 방송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 버넷은 2000년대 초 새 리얼리티 쇼를 기획했다. 출연자들이 과제를 놓고 경쟁하다 매회 1명씩 도태되는 내용. 버넷은 한 유명 사업가에게 쇼 진행을 제안했는데, 그 사업가는 “리얼리티 쇼는 밑바닥 인생들이나 보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버넷과 의기투합해 2004년 리얼리티 쇼에 참여했다. 사업가는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고, 리얼리티 쇼의 제목은 ‘어프렌티스’다. ‘어프렌티스’는 2017년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인기를 모았다.

□ ‘어프렌티스’에서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화려한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현실을 반영했다지만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허구가 보태졌다. ‘어프렌티스’의 게임 법칙은 간단하다. 각각 다른 이력을 지닌 지원자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트럼프가 준 임무를 수행한다. 돈을 많이 번 팀이 이기고, 진 팀에서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이 탈락한다. 트럼프는 매회 한 명을 지명하며 “당신은 해고야!”라고 외쳤다. ‘어프렌티스’에서 트럼프는 제왕과도 같았고, 대중 특히 미국 하층민은 돈 많고 단호하며 영리한 것으로 그려지는 트럼프에 열광했다.

□ 트럼프는 ‘어프렌티스’로만 2억1,400만달러 이상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아내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도 가끔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무엇보다 ‘어프렌티스’는 대중에게 트럼프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트럼프가 2016년 미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영향을 줬다. ‘어프렌티스’는 막을 내렸지만 현실의 쇼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주 트럼프는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을 트위터로 밝혔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에 이어 공개 해고 희생자가 또 나온 셈이다. 요즘 백악관은 리얼리티 쇼와 구분이 되지 않는 곳이 돼버렸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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