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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두 불평등에 대하여

입력
2019.09.12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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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과 9월 한국에서는 두 우연적 사건을 마주하는 정치적 결정이 있었다. 전자가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종료고, 다른 하나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재가다. 고민의 흔적은 반대의 흐름과 함께 있었다. 기대수익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곱셈적 우연이 주저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등이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현장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8월과 9월 한국에서는 두 우연적 사건을 마주하는 정치적 결정이 있었다. 전자가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종료고, 다른 하나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재가다. 고민의 흔적은 반대의 흐름과 함께 있었다. 기대수익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곱셈적 우연이 주저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등이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현장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우연의 과학’(2014)은 1789년 7월 파리의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사건이 당대 사람들에게 프랑스혁명의 시작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임을 짚는다. 우연적 사건이 역사에 기록되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다음 사건을 만들어 냈을 경우다. 역사에서 기록되는 우연이란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확률적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 같다. ‘우연의 과학’은 우연의 누적으로 출현한 생물처럼, 기존 경로를 넘어 새로운 필연을 만드는 우연을, 필연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처리하는 ‘덧셈적 우연’과 구분하여, ‘곱셈적 우연’이라 부른다.

인간의 앎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면, 본질적 우연의 존재는 필연이다. 미래가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결정이다. 2019년 8월과 9월 한국에서는 두 우연적 사건을 마주하는 정치적 결정이 있었다. 전자가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ᆞ지소미아)의 종료고, 다른 하나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재가다. 고민의 흔적은 반대의 흐름과 함께 있었다. 기대수익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곱셈적 우연이 주저를 만들었을 것이다.

2016년 11월 한일이 체결한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원한 미국의 오랜 소망의 산물이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있지만 빈 변인 한일을 하나의 선으로 만들고자 했던, 패권국가로 부상하려는 중국과 핵ㆍ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을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뜻이었다. 한국은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을 하고 4개월여가 지나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협력국인 일본과 지소미아 합의를 만들었다. 그 즈음 북한은 미국이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려 한다고 했다.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 갈등을 야기할 것이란 예측은 가능했다. 미 국방장관이 한일에 대한 ‘실망’을 언급했다. 한국의 국내 정치가 안보 이익에 우선했다는 내정 간섭에 가까운 발언도 나온다. 중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주권국가의 권리’로 환영했다. 국익이 동맹에 앞선다는 민족주의 담론부터 국익과 동맹을 등치하는 절충과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동맹 폐기 수순이라는 주장까지,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놓고 내전 상태다. 문제는, 예측 가능했지만 그 정도를 통제할 수 없었던, 언설로 불평등 관계를 보여준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포함한 한반도와 동북아 정치경제 질서의 재구축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의지와 능력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둘러싸고 대량설득무기인 언론과 야당이 전개한 공세는, 지배계급 내부의 극단적 권력투쟁의 한 단면이다. 법을 정치에 앞세운, 인사청문회 이전의 검찰 수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일깨워 준다. 국가 장치의 민주화를 내세운 진보와 거기에 맞선 보수 양 진영의 내전은,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정적 사건을 만들었다. 지배계급의 교육을 매개로 한 자기 재생산 과정의 민낯은 둘이 다르지 않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 이전에 기회의 평등이 봉쇄된 사회가 한국이라는, 바로 옆에 있었던 잃어버린 우산을 찾게 했다. 문제는, 불평등을 핵심 의제로 만들 수 있는 지배계급의 의지와 능력이다.

현재진행 중인 두 내전은,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나 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같은 우파 포퓰리즘을 위한 자산 축적 과정과 비슷하다. 진보 연하는 정치세력이 계급격차의 극복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국제질서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하곤 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보수는, 계급 격차의 극복을 의제화하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민족주의도 전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세력이 희망도 아니다. 두 우연적 사건은 정치세력의 무능을 실증하게 한다. 곱셈적 우연을 읽으며 두 내전의 핵을 가져갈 수 있는 정치세력을 소망하는 소박한 심정을 가져 본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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