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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기득권이 자녀 스펙으로… ‘합법’으로 무너진 입시 공정성

입력
2019.09.16 04:40
수정
2019.09.16 09:0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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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 무엇을 남겼나] <5> 견고해지는 교육 불평등 

 교육부 “학종 공정성에 최우선”… 전문가 “학교 교육 정상화에 중점 둬야” 

 ※조국 법무부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성, 자질 시비와 연관해 정치ㆍ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빚어졌습니다. 더러는 누적된 사회 현안이기도 했고, 과거 보기 드문 양상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조국 장관 인사검증을 통해 표출된 정치ㆍ사회 이슈를 점검하는 ‘조국사태 무엇을 남겼나’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는 공정성 문제나 진영 논리, 세대와 계층 갈등, 교육 제도, 미디어 역할 등 10가지 주제를 뽑아 현상을 짚어보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지난 5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른바 ‘조국 사태’는 가진 자의 사회적 배경이 입시를 포함한 자녀의 교육과정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청년들은 절망했고 국민들의 무기력함은 배가 됐다. 이한호 기자
지난 5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른바 ‘조국 사태’는 가진 자의 사회적 배경이 입시를 포함한 자녀의 교육과정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청년들은 절망했고 국민들의 무기력함은 배가 됐다. 이한호 기자

‘백년대계’가 또 다시 입시 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딸의 ‘입시특혜’ 의혹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하자 교육당국은 즉각 관련 논의에 돌입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혼란스럽다. 갈등을 거듭하며 공론화 끝에 ‘정시 30% 확대’를 골자로 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결정된 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일반 국민들이 분노한 지점 역시 단순한 입시 제도 문제가 아니었다. ‘조국 사태’가 생생하게 드러낸 것은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자본이 ‘합법’이란 이름으로 자녀의 교육과정 전반을 파고드는 불공정한 현실 자체였다. 학생부 기재 요소를 줄이고 정시 비율을 높이는 것과 같은 ‘기술적 접근’만으로는 교육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득권 욕망 앞에서 악용된 교육제도 

조 장관 딸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부모 없이는 도저히 넘보기 힘든 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정시 확대’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교육부 장관이 뒤늦게 “정시 확대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예 “수시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오는 등 ‘공정한 입시’를 위해선 정시 비중을 현행보다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반면 교육계의 입장은 수시보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세간의 인식과 거리가 있다. 비교과 항목이 중요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부모의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학종이 수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수시에는 일반고에 유리한 내신 위주의 ‘학생부교과’ 전형이나 지역 균형ㆍ농어촌 전형, 사회적 배려자 전형 등 다양한 전형이 존재하며, 오히려 정시 선호현상은 사회적 계층이 상층인 경우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시는 단순한 선발기제로서의 의미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 소양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정시ㆍ수시 비율 조정 대신 “학종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겠다”며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금수저 항목’으로 불리는 수상경력 기재 금지, 자기소개서 폐지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평가 요소를 손질하는 것만으로 교육의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황 교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학부모들의 의식을 바꾸지 못하고 서열화된 대학 구조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제도적 해결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한국 사회는 대학을 포함 모든 사회적 지위가 서열화돼 있고 기득권에 편입되지 못했을 때나 탈락했을 때 ‘실패의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제도를 계속 바꾸어 봤자 매번 남보다 위에 서겠다는 욕망에 악용될 뿐이라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도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등 대학 서열화 해소의 기반이 될 대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국공립대가 20%도 채 되지 않는 국내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에 부딪혀 답보상태다. ‘조국 사태’ 후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 통합을 주장하는 청와대 청원도 올라왔지만, 같은 이유 때문인지 아직 동의가 2,000명 가량에 그치며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입시제도 개편에 앞서 학교교육 정상화부터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은 “대입제도 변경보다 학교교육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학교현장에서의 교육 방식과 평가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입시제도 개선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학교교육 정상화 대신 대입제도 변경에만 초점을 두는 정부의 논의는 국가교육을 ‘누구를 어느 대학에 보내는가’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토론 수업과 서술형 평가를 늘리는 방식 등으로 학교 교육을 먼저 바꾸는 게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선 현행 수능이나 내신 같은 고부담 평가 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꿔 자격고사에 가깝도록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대학 서열화나 입시 경쟁을 아예 없앨 수 없다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이 과정에 개입할 여지를 줄여주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남미자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계급화된 네트워크가 자녀로 대물림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적어도 가정 배경이나 사교육 요인이 입시제도에 개입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게 현재 수준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입시전형을 간소화하고, 시험 성적을 단순히 점수화하거나 학생이 활동한 항목을 나열하는 식의 생활기록부 작성 방식도 학생이 이전에 비해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해 풍부하게 기술해 주는 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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