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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입 불공정의 역사

입력
2019.09.02 18:00
수정
2019.09.02 18: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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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 입시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 입시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정권은 출발부터 과오로 점철됐지만 역대 정권 중 거의 유일하게 국민 다수가 체감하는 공적이 하나 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시절 내놓은 ‘7ㆍ30 교육개혁 조치’다. 이 조치로 예비고사, 본고사 체제가 사라지고 예비고사를 대체한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성적으로 대입을 치르게 했다. 따지고 보면 1945년 이후 대학입시는 그때까지 대학별 시험만으로 뽑든가 아니면 ‘예비고사+본고사’를 병용하는 형태의 반복이었다. 가뜩이나 교육열에 불타는 사회에서 대학별 시험은 부정의 소지가 너무 많았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두 번 시험 체제는 수험생 부담이 컸다.

□ 전두환식 교육개혁은 사실상 예비고사만으로 입시를 치르자는 것이었다. 입시가 단순해진 데 대한 호응이 우선 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시 입시 개편이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7ㆍ30 교육개혁’이 최대 효과를 얻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무법적이라 해도 좋을 과외 금지 조치 때문이었다. 당시는 학원 과외마저 막는 사교육 전면금지 조치를 시행했고 대학 정원을 늘렸다. 요즘 EBS 교육방송을 토대로 만들어진 TV 과외의 원형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같은 입시 단순화와 과외 금지 효과는 당시에도 반향이 있었지만 그 뒤의 연구결과로도 확인된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1년에 내놓은 ‘계층 구조 및 사회이동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광복 이후 계층 간 사다리 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과외 금지 기간에 중고교를 다닌 1961년생부터 85년생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대입 단순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어쨌든 사교육을 억제할 때 계층 간 이동이 열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2000년 헌법재판소의 과외 금지 위헌 결정에서 보듯 지나친 사교육 억제가 여러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 제도 전반 재검토”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수능 절대평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과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새삼 문제가 됐다 해서 점수 위주의 수능 평가(정시)로 되돌아가자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과외 금지가 위헌인 마당에 정시 일변도로 수험을 치른다고 공정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학생의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고 교사의 재량권을 넓히는 방향을 유지하되 제기된 학종의 부작용을 보완해 가며 절대평가를 늘린 정시를 보조 장치로 활용하는 현 입시의 개선이 바람직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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