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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장 조레스의 길(9.3)

입력
2019.09.0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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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조레스는 20세기 초 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개인' 위에 국가와 민족뿐 아니라 '계급'을 두는 데도 반대했던 사회주의자다.
장 조레스는 20세기 초 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개인' 위에 국가와 민족뿐 아니라 '계급'을 두는 데도 반대했던 사회주의자다.

장 조레스(Jean Leon Jaures, 1859.9.3~1914.7.31)는 파리 코뮌과 반동, 제2인터내셔널과 세기 초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사회주의자다.

그는 그의 시대 사회주의 혁명의 주역인 레닌이나 로자 룩셈부르크 등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써만, 다시 말해 무력 투쟁으로써만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계급 착취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보통선거와 의회 정치를 통한 개혁의 혁명적 가능성을 신뢰한 의회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였다. 그는 주류 사회주의 진영 입장에선 베른슈타인 유의 개량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였다.

그는 계급보다 인간을 앞세운 인본주의자였고, 국가ㆍ민족을 개인 위에 두는 우익 국가주의ㆍ민족주의 못지않게 개인 위에 계급을 두는 것도 경계한 개인주의자였다. 즉 그의 계급주의는 개인주의의 토대 위에서만 유의미한, 즉 계급 없는 사회라는 더 먼 이상적 전망 위에서만 작동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 카스트르(Castres)에서 태어나 제3공화국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돼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소부르주아 출신 엘리트였다. 만 26세에 공화파 비례대표로 하원 의원에 당선된 이래 공화-사회당 6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었고, 1904년 ‘뤼마니테(인류)’라는 진보 일간지(현 공산당 기관지)를 창간해 편집인을 지낸 언론인이었다.

그는 1892년 카르모(Carmo) 광산 파업을 계기로 공화파에서 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 지역 정치 권력을 장악한 광산 자본에 맞서 노동자와 농민들이 감행한 파업. 카르모의 민중은 노동자 후보를 카르모 시장으로 뽑았고, 자신들의 파업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조레스를 도와 하원의원이 되게 했다. 그는 이 경험적 각성, 즉 선거를 통한 민중의 힘을 믿었다.

조레스의 가장 빛나는 면모는, 현실 정치 무대에서 긴 세월을 보내면서도 부와 권력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윤리의 원칙을 지키고, ‘개량주의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혁명 권력에 투항하지 않은 점이었다. 시민들은 그를 ‘민중의 호민관’이라 불렀다.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의 열렬한 변호인이자 1차 대전의 가장 격렬한 반전주의자였던 그는 한 광적인 극우 청년의 총에 숨졌다. 연구자 노서경이 번역한 막스 갈로의 평전 ‘장 조레스 그의 삶’과 조레스의 연설과 논설 등을 엮은 ‘사회주의와 자유 외’란 책이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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