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원의 시 한 송이] 춤

입력
2019.08.23 04:40
수정
2019.08.23 10:23
29면
0 0

뜻 생각 안하고 읽기만 해도, 말맛이 참 좋은 시예요. 울렁울렁 넘어가는 맛이, 딱딱 들어맞는 합이, 저절로 끄덕여지는 고갯짓이 생겨요.

레고 같은 시예요. 어떻게 끼워도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고도의 계산을 장착한 블록들이기 때문이죠. 우선 한 자 요술이에요. 숨 쉼 빔 섬 둠 짬 봄 첨 덤 맘 뺨 품 님 남 놈 뼘 점 움 꿈 잠 홈 틈 짐 담 금 말 땀 힘 참 춤 삶. 다음 두 자 요술이에요. 보름 그믐 가끔 어쩜 웃음 울음 요람 바람 범람 감금 채움 입술. 세 자는 딱 둘이에요. 몸부림 안간힘. 연을 따라, 의미를 따라, 라임을 따라, 자유자재 레고가 가능한 것은 시인이 이미 여러 자리의 조립을 해봤기 때문이죠.

세 번째에서 역전하는 리듬이죠. 봄이고 첨인 내 숨은 덤이라네요. 내 맘은 점이고 섬이어서 거기서 움이 튼다네요. 보름과 그믐을 겪어, 님과 남과 놈을 겪어, 요람과 바람과 범람이 한통속임을 알게 되었고, 두 입술이 맞부딪쳐 머금는 땀나는 숨이 참이라는 분별에 닿았다네요.

한 글자, 두 글자, 세 글자로 나팔처럼 퍼지는 이 시에서 요즘의 제가 고르고 싶은 한 단어는 덤이에요. 덤이니 춤이다, 이 방향을 지지해요. 안간힘을 몸부림을 숨으로 가진 삶이 춤이 안 된다면, 덤을 마땅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나, 가끔과 어쩜의 보름과 그믐을 오가지 못한 채 채움과 감금을 헷갈리고 있지는 않나, 되돌아보는 시간이에요. 덤은 가진 것 위에 이유 없이 더 얹어지는 것. 받으면 우선은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것, 정이면 귀엽고 커지면 부당한 것. ‘더’보다는 ‘덜’, 거기에 삶이 춤이 되는 지혜가 들어있다, 저는 오늘 제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지요.

이원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