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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대중과 오부치

입력
2019.08.1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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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국빈 방일 이틀째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국빈 방일 이틀째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9월 6일 오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후 나는 곧바로 공식 환영행사가 준비된 영빈관으로 이동했다.…곧이어 나는 궁성으로 천황을 예방했다.…히로히토 천황은 만찬사를 통해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천황이 우리나라에 대해 과거 제국주의시대의 과오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판금된 ‘전두환 회고록’에는 그가 1984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일본을 공식 방문할 때 이야기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등장한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 중 일본 공식 방문은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며 전통이 됐다. 그 전에도 비록 비공식이긴 했어도 이승만 대통령이 3차례, 박정희 대통령도 한 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주요 대통령 중 일본을 방문하지 않은 대통령은 두 명이다. 오사카 태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방문은커녕 느닷없는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아버지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박근혜 대통령이 대일 비판을 앞세우다 졸속 한일 위안부 합의로 역풍 맞은 것이 아이러니하다.

□한일 정상 교류의 백미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다. 김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에 날 선 비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실력을 인정하고 협력과 연대를 추구한 현실주의자였다.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일본에서 한국과 국교 단절까지 검토하고 대대적인 구명운동이 일어났던 특별한 인연도 이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상투어가 된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문구를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핵심 정신으로 녹여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아무리 역사정신과 현실감각을 겸비했더라도 상대인 일본 총리가 지금 아베 같았더라면 협력을 추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관방장관 시절 ‘헤이세이(平成)’ 연호를 알리는 사진으로 만인에 기억되는 오부치는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식은 피자”라는 혹평까지 들었지만 그런 스타일이 김 대통령의 합리주의와 융합할 토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더 이상의 적대를 접고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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