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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미국의 인종카드

입력
2019.08.19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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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민주당 2020년 대선 경선 후보 2차 TV토론에 참가한 후보들의 모습. 왼쪽부터 코리 부커(뉴저지)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해리스(캘리포니아) 상원의원, 기업인 앤드루 양. 디트로이트=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민주당 2020년 대선 경선 후보 2차 TV토론에 참가한 후보들의 모습. 왼쪽부터 코리 부커(뉴저지)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해리스(캘리포니아) 상원의원, 기업인 앤드루 양. 디트로이트=AP 연합뉴스

최근 이민자를 혐오하는 한 젊은 백인 남성이 자행한 미국 엘파소 총격사건은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 언행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는 멕시코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색인종을 꾸준히 모욕하고, 아이티와 아프리카 이민자가 ‘거지소굴’에서 왔다고 막말을 해댔다. 지난달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라시다 털리브, 아이아나 프레슬리, 일한 오마 등 네 명의 민주당 유색 여성의원들에게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시민이며, 오마 외에는 모두 미국 태생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는 분명 지지자들의 가장 어두운 본능, ‘인종차별주의자’외에는 달리 묘사할 수 없는 분노, 앙심, 완고함, 편향성 등에 호소하고 있다. 증오심을 자극해 재선에 성공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말을 폭력에 대한 허용으로 생각한다. 이래서 트럼프의 언행이 위험한 것이며, 비판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할 만하다. 어떤 비평가는 인종 문제가 2020년 대선의 중심 이슈여야 한다고 말한다. 성난 백인 유권자들에 의존하는 트럼프 대응 전략은 다양성, 반인종차별주의, 유색인종 권리상승 등이 돼야 한다.

이 전략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문제는 인종차별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트럼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하는 ‘투표로 악당 몰아내기’가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의심할 필요는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을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다. 2018년 프랑스 국민연합 집회에서 트럼프의 전 고문 스티브 배넌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을 명예훈장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평가에 대해 억울해 한다. 이들은 보통 백인 노동자이고 대부분 오바마를 두 번 뽑았다. 민주당은 이들을 주요 격전지인 중서부 지역에서 아군으로 되돌려야 한다.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이미 인종차별적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트럼프가 그렇게 나온다고 상대방도 똑같을 필요는 없다. 미국정치가 복잡한 것은 인종, 계급, 문화의 복합적인 영향 탓이다.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유색 여성의원들에 대한 언급을 “인신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레이엄의 지적처럼 그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특정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발현이다. 이 여성의원들은 일반 미국 기준으로 좌파이긴 하나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어떤 우익에게는 공산주의, 심지어 사회주의도 ‘반미’이지만, 이는 매카시가 ‘반미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던 1950년대 초 사고방식이며, 이런 무차별적 공격은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인생을 망쳤다.

같은 이유로 생식의 자유를 옹호하거나 무신론자이거나 모든 성(性)과 성적 취향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변론하거나 보편의료를 지지하는 작가, 교수, 변호사는 ‘감성적 무신론자’ ‘유럽인’이라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좌파적 견해는 특정 인종과 관련지을 수 없다. 오히려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비백인 소수민족 연합이 트럼프의 백인쇼비니즘에 맞서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사람들도 경계해야 한다. 많은 아프리카ㆍ라틴계 미국인들은 보수적이며 종교적이다.

물론 인종은 미국의 문화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백인 특권’ 개념은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적 균열을 인종분열의 측면에서 보는 것은 과도한 흑백논리다. 트럼프와의 싸움에서 ‘백인 특권에 대한 반대’를 주요 기반으로 삼는 것은 민주당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원들조차 서로 등돌리게 할 수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상적인 민주당 후보는 아니다. 나이가 많아 빠른 대응이 어렵다. 그러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만으로 그를 공격하고 심지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실수다. 생각이 다르거나 실제로는 싫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계에서 흔한 일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시절보다 더 심하게 민주당을 좌파로 밀어붙여 왔다. 트럼프다운 행동이다. 그는 네 명의 여성 하원의원을 정적의 대표 이미지로 삼으려 한다. 오바마 시절의 연관성을 자랑스러워하는 바이든은 젊은 경쟁자들에게서 인종적으로 민감한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지난달 31일 열린 민주당 2차 토론회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적대감으로 얼룩졌다. 바이든은 이를 ‘기이한’ 것으로 여겼다.

바이든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오바마가 성공한 이유는 정치에서 인종 문제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종 이슈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 인종에 관한 최고의 연설을 남겼고, 그러면서도 인종이 주요 이슈가 되는 것은 피했다. 바이든은 오바마가 아니지만, 다른 정치인, 심지어 흑인 정치인보다 더 큰 흑인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이기려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훨씬 나았던 그의 전임자를 넘어서야 한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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