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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송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입력
2019.08.12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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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첫 방송돼 지난 5월 막을 내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HBO캡처
2011년 첫 방송돼 지난 5월 막을 내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HBO캡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지난 5월 시즌8을 끝으로 막을 내린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종종 나오는 대사다. 드라마 속에서 겨울은 여러 의미를 띠고 있다. 계절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혼돈과 혹독한 시련, 죽음, 공멸 등을 뜻하기도 한다.

2011년 첫 방송된 ‘왕좌의 게임’은 미국 유료 방송사 HBO를 8년 동안 먹여 살린 히트상품이었다. 미국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왕좌의 게임’ 시즌1의 1회당 평균 미국 시청자수는 252만명이었지만 매 시즌 시청자를 늘리더니 시즌8의 1회당 평균 시청자수는 1,199만명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도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모았다.

장기 인기 드라마의 종방은 방송사에게 위기를 의미한다. ‘왕좌의 게임’이 막을 내리자 영국 미디어 연구소 니먼 랩은 ‘HBO 스트리밍 구독에 겨울이 다가올 수도 있다…(Winter May Be Coming for HBO’s Streaming Subscriptions…)’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킬러 콘텐츠가 더는 신규 에피소드를 내보낼 수 없으니 HBO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인 HBO나우의 가입자 수도 급감하지 않겠냐는 전망이었다.

기존 방송사들이 ‘겨울’의 신호로 받아들일 만한 소식이 지난 7일 추가로 들려왔다.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왕좌의 게임’의 기획과 각본을 함께 맡았던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대니얼 와이스가 세계 최대 OTT인 넷플릭스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독점적으로 만들기로 계약했다. 넷플릭스는 아마존, 월트 디즈니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베니오프-와이스 콤비를 품에 안았다고 한다. ‘왕좌의 게임’ 시즌8은 팬들로부터도 ‘망작’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HBO가 베니오프-와이스 콤비와의 계약이 종료되기 전 서둘러 만들다가 벌어진 ‘참사’라는 분석이 있다.

세계 동영상 시장 재편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OTT전쟁에서 넷플릭스는 베니오프-와이스 콤비라는, 강력한 신형 무기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6일엔 넷플릭스 관계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뉴스가 있었다. 디즈니는 11월12일(미국 기준)에 첫 선을 보일 자사 OTT 디즈니 플러스를 기존 OTT 자회사(훌루와 ESPN 플러스)와 묶음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가격은 한달 12.99달러로 넷플릭스 표준 가격과 동일하다. 넷플릭스 주가의 최근 하락세는 디즈니의 공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 감독과 제작자와 작가가 특정 OTT와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존 지상파 방송사나 케이블 방송사가 함께 언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방송ㆍ영화 시장은 대형 OTT가 점령해 가고 있다. 한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시장 진출도 시간 문제다.

한국도 OTT 시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국내 업체와 자본은 무방비 상태다. 11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KBS는 올 상반기에만 396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MBC는 지난해 1,094억원 손실을 봤다. 대형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은 추락했는데, 콘텐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해 돈을 못 버는 구조다.

지상파 방송사는 SK텔레콤의 OTT인 옥수수와 손잡고 넷플릭스 등의 공세에 맞선다지만 비관적 관측이 우세하다. 방송사는 방송법에 따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지만, OTT는 통신법의 규제를 받는다. 정부 업무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로 나뉘어져 있다. 2008년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주장하며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방송과 통신 사이에 놓인 칸막이는 오히려 더 높고 두꺼워졌다. 9일 개각으로 방통위 위원장과 과기정통부 장관이 동시에 바뀌어 새로운 정책을 기대할 만도 하지만, 방송통신 융합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한국 방송가에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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