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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리포트] 화장품 1도 몰랐던 이 남자… 언니들의 파우치를 훔치다

입력
2019.08.08 16:05
수정
2019.08.08 19:4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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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전지훈 대표 “언니의 파우치 이름 딴 언파코스메틱 화장품, 해외로 수출할 것”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K뷰티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타트업 라이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두 가지였다. 유명한 뷰티 커뮤니티 ‘언니의 파우치’를 운영하며 여성 화장품을 만드는 업체 대표가 남자라는 점과 검은 치약, 검은 샤워용품 등 주요 제품이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8일 만난 전지훈(34) 대표는 잘못된 편견일 수 있으나 곱상하거나 여성스러운 외모가 아니고 화장을 진하게 한 것도 아니어서 화장품에 관심을 가질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화장품 회사에서 일한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어떻게 국내 최대의 여성 뷰티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 들었을까.

◇언니의 파우치와 여성 화장품을 만든 남자

전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현대카드에 입사했다. 이듬해 그는 친구들과 비슬로우라는 패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거기서 패션을 다루다 보니 미용(뷰티)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패션 못지 않게 뷰티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012년 겨울 3명의 친구들과 라이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3명의 창업자는 모두 남자였다.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카페 등으로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모바일에서도 해보자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커뮤니티가 1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언니의 파우치’다. 언니의 파우치는 이용자들이 각종 화장품 정보나 화장 방법 등을 공유하는 곳이다. 이용자가 늘어나자 2017년부터 온라인 광고를 붙여 매출을 창출했다.

여기 그치지 않고 전 대표는 이용자들이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 가운데 기존 화장품을 사용하며 불편하게 느낀 점들을 눈 여겨 봤다. 그는 “이용자들의 불만을 해소한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2017년부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브랜드는 ‘언파코스메틱’으로 정했다. 모태가 된 언니의 파우치 앞글자를 딴 이름이지만 해외에서는 K뷰티의 미스터리를 풀어본다는 뜻의 ‘unpacking K-beauty mysteries’의 약자라고 소개한다.

◇소비자들이 만드는 독특한 제품들, 입술각질제거제와 검은 치약

언파코스메틱은 출발부터 기존 화장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기존 업체들이 많이 팔 수 없다는 이유로 잘 만들지 않는 제품에 손을 댔다. 첫 제품은 입술각질제거제 ‘부비부비립’이다. 입술에 각질이 생기면 립스틱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각질 사이에 끼는 문제가 발생한다. 외국에서는 거친 알갱이를 문질러 때처럼 밀어내는 입술각질제거제를 사용하지만 사용 과정이 아플 수 있다.

언파코스메틱의 입술각질제거제는 다른 방법을 썼다. 제품을 바르면 거품이 발생해 각질을 연하게 만든다. 이후 손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면 떨어져 나간다.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파우치에 올라온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을 눈여겨 본 덕분이다. 기존 제품과 달리 아프지 않게 입술 각질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소위 열혈 소비자인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요구였다.

그래서 전 대표는 언파코스메틱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소비자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기존 화장품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 언파코스메틱의 성공 비결이었다.

이 제품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어 100만개 이상 팔렸다. 베트남에서 유사품이 등장할 정도였다. 전 대표는 “전체 판매량의 절반이 해외에서 팔렸다”며 “일본 아마존저팬과 라쿠텐에서 K뷰티 화장품 1위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내놓은 18종의 화장품을 이런 방식으로 개발했다. 소비자들이 의견을 내고 제품 시험에 나서는 등 개발 과정에 참여했다. 라이클의 한만휘 전략총괄이사는 “우리나라의 코덕들이 개발에 가장 많이 참여한 제품들”이라며 “어떤 소비자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 사진을 찍어 보낼 정도로 열성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을 반영한 제품 출시가 소비자들을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검은 치약인 ‘차차 치약’도 소비자들의 아이디어였다. 숯가루 성분이 들어간 이 치약은 검은색이다. 언뜻 보면 치아에 검은색을 바른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수 있는데 국내에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이 치약은 언니의 파우치 이용자들이 미국 유럽에 널리 퍼진 숯가루를 묻혀 칫솔질 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제품화로 이어졌다. 탈취 기능을 갖고 있는 숯 성분이 입냄새 제거에 효과적으로 알려져 있다. 전 대표는 “검은 치약은 이용자들이 해외의 새로운 동향을 알려주며 제품화를 촉구한 사례”라며 “지난해 2분기에 출시해 누적으로 80만개 이상 팔았다”고 설명했다.

언파코스메틱은 기존 국내 화장품 업체들과 확연하게 다른 방식으로 K뷰티의 틈새 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한 이사는 “소비자들이 커뮤니티에 올린 의견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한 점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점이 특징”이라며 “해외에서도 이런 점이 통해 미국 온라인숍 로드스트롬, 대만의 소고백화점 등에서 언파코스메틱 제품을 팔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클은 이런 개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한 자산을 하나 갖고 있다. 바로 대형 화장품 업체들이 갖지 못한 ‘언니의 파우치’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전 대표는 “소비자 의견이 필요한 설문 조사나 샘플 시험 등을 언니의 파우치에서 진행하면 신속하게 답을 얻을 수 있다”며 “심지어 소비자들이 나서서 이용 후기 등으로 제품 홍보까지 해준다”고 말했다. 대형 화장품 업체들은 이 모든 과정을 별도 조사업체에게 돈을 주고 진행해야 한다. 이 점이 직원 47명의 스타트업이지만 대형 화장품 업체에 전혀 뒤지지 않는 라이클의 강점이다.

◇니베아가 주목한 회사 “목표는 전세계 시장”

라이클의 강점은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니베아에서도 주목했다. 독일기업 바이어스도르프 산하의 니베아가 국내 K뷰티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4월 진행한 ‘니베아 액셀러레이터’ 행사에 선정된 것이다. 200여개 업체가 경합을 벌여 5개사가 선정됐는데 여기에 포함됐다. 라이클은 니베아의 비용 지원을 받고 서울 홍대 위워크점에서 개발팀 일부가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 전 대표는 “니베아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고 회사를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좋아했다.

라이클은 언파코스메틱 제품을 계속 만들 예정이다. 전 대표는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사용하며 느끼는 다양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 것”이라며 “그만큼 무궁무진한 제품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품 개발 기간은 보통 6~8주 정도 걸린다. 이후 국내 주문자상표부착(OEM) 업체나 제조사개발생산(ODM) 업체에 의뢰해 제품을 만든다. 화장품은 다행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소재가 없어서 한일 무역 갈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없다.

전 대표는 여러 제품 개발에 참여하며 열심히 사용한 덕분에 여성 화장품을 잘 아는 남자가 됐다. 그는 “다른 업체들이 만든 여성 화장품도 많이 사서 쓴다”며 “아내가 화장품 추천을 요청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세계 시장 확대다. 전 대표는 “각 제품들이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제품들”이라며 “해외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시장은 현지 사정을 잘아는 유력 유통업체들과 손을 잡아 개척하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 왓슨스, 일본 동키호테와 도큐핸즈 등이 손을 잡았고 베트남 태국 몽골에도 진출했다. 올 4분기에 유럽 진출을 위해 스페인 영국 등의 현지 업체들과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전 대표는 “현재 매출 비중이 국내 70%, 해외 30%인데 앞으로 해외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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