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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트럼프의 동맹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9.08.06 2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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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자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사카=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자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사카=로이터연합

2016년 9월 미국 국무부 프로그램에 참여해 동남아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을 방문했을 때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임기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 국무부의 당시 최대 관심사는 중국과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벌어지던 남중국해 주변 정세였다. 인도 태평양을 향해 나아가던 미국, 그리고 육상에 이어 해상으로도 일대일로를 펼치며 중화(中華)를 확장하려던 중국이 바야흐로 패권 다툼을 벌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국무부 관계자들은 동맹국 언론인들에게 미국의 힘과 기술이 왜 핵실험을 벌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한보다 동남아국가들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등으로 집중되는지를 설명하려 애쓰는 듯 했다.

중국의 기세를 함께 눌러줄 동맹의 협조가 절실했던 미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땅 성주에 사드 배치를 확정 지었다. 미국이 ‘린치핀’과 ‘코너스톤’을 오가며 강조해온 ‘철통 같은’ 동맹으로서 한국은 할 일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미일 동맹의 의무를 수행해온 우리 정부가 주변국들의 공세에 내몰리며 최악의 외교 고립 국면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게 말이다. 3년 전 가을 필리핀 마닐라 미국 대사관 안쪽에 놓여있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의 모형 앞에서 “설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까?”라고 말할 땐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한국 외교의 오늘은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미국은 우리를 어떤 동맹으로 생각하는지, 나아가 중국에 이어 일본으로부터 최악의 경제 보복을 당하는 한국의 모습에 미국의 책임은 없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을 향해 진정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는 그가 취임했던 2017년 1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쉽게 짚어볼 수 있다. 일본의 한국을 향한 무역전쟁 선포 이후 한 달여 동안 중재는커녕 시의 적절한 관여조차 보이지 않는 트럼프 정부의 외교방향성은 이미 취임식 날 발표한 ‘6대 국정기조’에 명시돼 있다. 에너지 계획, 일자리 창출, 군사력 재건, 법질서 회복, 무역협정, 그리고 외교정책의 카테고리마다 달라붙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꾸밈어로 분명히 정의된 트럼프 방식은 적국이든 동맹국이든 가리지 않고 매몰차게 대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다시 위대한 미국’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지지로 백악관에 입성한 태생적 한계를 지닌 그에게 한국은 미국인의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탱해줘야 할 만큼 값어치가 높은 동맹은 아니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인해 국난을 겪는 한국을 향해 트럼프 정부는 불 난 집을 지켜보다 ‘챙겨갈 세간살이가 좀 있나’라며 궁리하는 듯한 모습이다. 한국이 곤궁에 빠진 상황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 청구서를 내밀었고,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 등의 개발도상국 지위까지 건드렸다. 한일갈등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동맹을 앞에 두고 트럼프 정부는 계산기만 냉정하게 두드렸다.

동맹국도 각자의 안위는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세 차례의 아시아 지역 전쟁으로 지친 미국이 1969년 7월 내놨던 ‘닉슨독트린’을 떠올리게 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독트린 3항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미국은 직접적, 군사적 또는 정치적인 과잉개입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미국의 동맹에 대한 원칙은 지난 50년간 달라진 게 없을지 모른다. 1960년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듯이, 오늘날 미국은 중국이라는 최대 경쟁자와 싸우느라 동맹의 뒤를 봐줄 겨를이 없다.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미중 갈등 수위를 끌어올린 미국에 과연 한일갈등을 중재할 마음이 남아있을까.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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