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6.5℃] 염치라도 가지시라

입력
2019.08.05 19:00
수정
2019.08.06 09:07
26면
0 0

※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참석해 있다. 김 위원장은 전날 밤 술에 취한 채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주도, 주취심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참석해 있다. 김 위원장은 전날 밤 술에 취한 채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주도, 주취심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나마 당시엔 경제에 국한되고 세계 모든 국가가 휘청댔지만 지금은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 파고까지 우리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경제 둔화라는 기존 문제에 일본의 악의적인 옥죄기가 더해진 것이다. 일본은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분야를 골라 때리는 무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부터 반도체 소재ㆍ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언제 양국이 우방이었느냐’는 식으로 전략물자 수출우대 국가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도 한국을 배제했다. 자국 관광객 감소, 세계적 분업체계 붕괴, 세계 주요 언론ㆍ기업들의 원성 등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한국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전의로 가득하다.

일본 수출규제가 가져올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할 수 없다. 당장 정부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2.4~2.5%는 너무 높아 보인다. 수출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산업 전반에 걸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일본이 장악한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을 국산화하기까지 지난한 험로도 예상된다. 상당 기간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 국산품 장려 운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 극일’ 정신을 다잡는 모습은 뭉클하다.

이런 와중에 모범을 보여야 할 집단에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버젓이 드러내는 점은 개탄스럽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사이익을 얻은 일부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표이사의 보유주나 자사주를 매각해 잇속을 챙겼다. 일본의 경제 공격에 ‘애국’하는 심정으로 보여준 국민들의 관심을 자기 그릇 챙기기에 악용한 것이다. 실적이 좋거나 성장 가능성이 농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일본과의 충돌 때문에 ‘손 안 대고 코 푼’ 기업들이다. 이런 염치 없는 기업들에 향후 산업 육성 정책자금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국회의 몰염치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지난 넉 달 동안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않고 당쟁에만 몰두했다. 그 기간 국회 생산성은 전무했음에도 급여와 의정활동비는 꼬박꼬박 챙겼다. 경제가 고꾸라지는 상황에서도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은 100일이 다 되고서야 겨우 통과시켰다. 올해 초 회복세라던 경제 전망을 뒤집고 추경을 추진한 정부여당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면서도 대책 없이 딴죽만 걸었던 자유한국당도 뻔뻔하기가 그지 없다.

특히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 논의를 주도해야 할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술에 취해 심사하는 추태를 벌였지만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 없다. 소속 당은 ‘엄중 주의’라는 하나마나 한 징계를 내리면서도 “강력 조치”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더욱이 김 위원장은 ‘총선용 추경 사업은 들어내겠다’며(한국당의 당론) 추경 규모를 정부안에서 1조3,876억원을 깎아놓고선 자신의 지역구(경북 상주시ㆍ군위군ㆍ의성군ㆍ청송군)인 의성군 폐기물처리 예산은 5배로 늘리는 이율배반의 전형을 보여줬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내년 총선에 유리하도록 대응하자’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여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도 염치 없긴 매 한가지다.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심각한 사안을 국익이 아닌 총선을 위한 주판알로 여긴다는 졸렬한 인식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역시 담당자 경고와 주의로 꼬리 자르려는 모습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모두가 똘똘 뭉쳐 일본에 대항하자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일본 수출규제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염치’는 가지라 말하는 것이다. 특정 사안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사안이 없었다면 이익을 얻을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일본의 옹졸한 보복에 울화가 치미는 국민들에게 짜증까지 얹어주진 말아야지 않은가. 몰염치, 파렴치는 일본 아베 정부로 족하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