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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종군 사진작가 로저 펜튼의 전장(8.8)

입력
2019.08.08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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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종군 사진작가 로저 펜튼이 1869년 오늘 별세했다.
최초의 종군 사진작가 로저 펜튼이 1869년 오늘 별세했다.

로저 펜튼(Roger Fenton, 1819.3.28 ~ 1869.8.8)은 크림전쟁(1853~56)의 전장에서 1년여 동안 360여개 원판 사진을 찍은 최초의 종군 사진기자다. 초창기 사진기법의 예술적ㆍ기술적 대가인 그는 영국 정부의 공식 사진작가로 그 전쟁을 취재했다.

그는 사진(특히 포토저널리즘)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기록에 등장하지만, 사진 정보 조작을 범한 첫 작가라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프랑스-영국 동맹군이 크림반도에서 부딪힌 그 전쟁에서 60만여명이 숨졌다. 하지만 펜튼의 사진 어디에도 시신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펜튼이 시신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은 우선 영국 정부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전황 보도가 이어지면서 전쟁을 멈추라는 시민들의 압박이 거셌다. 1955년 2월 출범한 연립내각과 왕실은 안정적인 전쟁 지원을 위해 여론을 개선해야 했다.

하지만 영국 왕실과 전시 내각이 펜튼의 허가권자였다면, 재정적 후원자는 맨체스터의 한 출판업자(판화상 토머스 애그뉴)였다. 자본으로선 전쟁 현장을 기사와 문학 작품이 아닌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했고, 당연히 시신 사진도 원했을 것이다.

펜튼은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에 열광한 작가이자 모험가였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변호사였고, ‘신사’였다. 그를 변호하는 이들은 신사의 윤리가 시신에 감광판을 들이대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펜튼의 ‘콜로디온 습판법’ 사진기술은 유리 감광판에 감광재를 발라 재료가 마르기 전에 촬영하고 현상까지 마쳐야 하는 난점이 있었다. 암실까지 ‘휴대’해야 했던 그는 1855년 2월 조수 4명과 함께 3필의 말이 끄는 마차(암실)를 타고 전장으로 향했다. 마차에는 36개 장비 상자뿐 아니라 마구와 말 먹이까지 실려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전장은 로버트 카파 같은 이들의 전장과 달랐다. 그렇다 해도 펜튼의 전장 사진은 지나치게 목가적이었다.

그의 사진들은 전시 내각과 상업자본을 대체로 만족시켰다. 시민들은 1실링의 입장료를 내고 그의 사진을 관람했고, 전시는 영국 전역에서 열렸다. 펜튼은 1863년 자신의 사진 장비 일체를 팔고 변호사업에 전념했다. 사진의 상업화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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