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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심각한 열사병 환자 실려왔는데…” 작년 서울 폭염 사망자가 4명?

입력
2019.07.16 04:40
수정
2019.07.17 18:4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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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국내 편<3>사망자 48명 뒤에 가려진 진실

“열사병 환자들은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몸이 말라 있고, 머리에 손상을 입어 대소변조차 조절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정온동물인 사람에게 열에너지가 가해져 체온이 높아진 거라 우리가 흔히 보는 열 나는 모습과도 달라요.”

‘불가마 지옥’.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37)씨가 지난해 여름 하면 떠올리는 표현이다. 더위가 절정이었던 2018년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그는 응급실 중환자구역 침대 4개를 가득 채운 온열질환자와 맞닥뜨리는 것으로 아침 9시 일과를 시작해야 했다. “밤 사이 의식을 잃은 열사병 환자가 아침부터 들어왔어요. 중환자 구역에 전부 열사병 환자만 쭉 누워 있는데, 더 이상은 안 오겠지 싶어도 계속 왔죠.”

8월 1일은 특히 심각했던 하루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아침에는 뜨거운 방 안에서 밤새 수분을 빼앗기고 체온이 오른 환자들이 병원을 찾았다. 점심 무렵에는 산책을 나갔다가, 혹은 조그만 텃밭을 가꾸다 쓰러진 노인이 실려왔다. 늦은 오후가 되자 폐지를 줍던 노인이나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 같은 ‘생계형 환자’들을 돌봐야 했다. 남궁씨는 “11년째 의사 일을 하고 있지만 작년에 본 온열질환자 수가 나머지 모든 해 환자를 합한 것보다 많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씨가 지난 달 7일 응급실에서 환자 정보를 모니터하고 있다. 김창선PD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씨가 지난 달 7일 응급실에서 환자 정보를 모니터하고 있다. 김창선PD

직접 사망 선고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살아남기 힘들어 보이는 온열질환자도 치료했다. 길에서 쓰러져 실려온 60대 노숙인은 몇 시간째 이어지던 경련이 응급실에서 겨우 멈췄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궁씨는 “거의 뇌사 상태였는데 결국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지옥 같은 여름이 끝난 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정리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접한 남궁씨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국 48명, 특히 서울은 4명이라는 폭염 피해 사망자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경험한 환자도 몇 명이나 되는데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질병관리본부 신고가 어떻게 집계되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는데, 의사인 제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알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질본 온열질환 신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잘라 말했다. 환자 진료가 급한데 병원 인력을 쪼개 통계를 따로 작성할 시간도 부족하고, 정부는 이와 관련해 제대로 된 지원을 하거나 작성 의무를 부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온열질환 사망자 48명은 빙산의 일각?

국내 각 기관 별 온열질환자 집계 차이/ 강준구 기자/2019-07-15(한국일보)
국내 각 기관 별 온열질환자 집계 차이/ 강준구 기자/2019-07-15(한국일보)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감시체계)’는 폭염 기간 온열질환자 발생 현황 정보를 정리한 전산시스템이다. 2011년 7월 질본이 국가 예방정책 수립 기초 자료로 활용하겠다며 구축했다. 응급실에 온 온열질환자 정보를 병원이 전산망에 입력하면, 관할 보건소와 시도 지방자치단체 검토를 거쳐 질본이 취합, 발표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온열질환자 4,526명이 집계됐다.

문제는 이 수치가 병원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환자 정보 누락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질본 역시 이런 한계 때문에 “감시체계 집계 결과는 온열질환 발생자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게다가 폭염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행정안전부는 감시체계의 수치를 사실상 유일한 인명 피해 현황 자료로 삼아 대책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폭염 피해 현황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의문은 소방청 119 구급대 폭염 기간 활동일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청 자료 비교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19 구급대 기록에 따르면 온열질환 환자 관련 전체 출동 수 2,665건 가운데 병원 이송으로 표기된 환자는 모두 2,485명이었다. 반면 감시체계 집계에선 119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에 왔다고 기록된 환자가 2,135명으로, 346명이나 적었다. 일부 환자가 병원 도착 후 온열질환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큰 오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와도 차이가 컸다.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보험을 청구한 국민은 총 2만4,351명으로 나온다. 감시체계에 등록된 총 온열질환자(4,526명)의 5배가 넘는 수치다.

통계청 기록과도 해마다 괴리가 있다. 실제로 감시체계 도입 첫해 질본은 총 11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통계청은 26명으로 집계했다. 2016년에도 온열질환 사망자 수를 질본은 17명, 통계청은 76명이라고 발표해 큰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통계청이 집계하는 지난해 폭염 사망자 통계는 오는 9월에나 공개된다.

질본은 감시체계 집계가 애초부터 온열질환자 발생 추세를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지표이기 때문에 전체 규모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도우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박사는 “통계청 발표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 정부 대응 지표로 삼기 어려운 만큼 통계청이 사전에 추산치라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나마 모은 환자 정보도 가치 낮아

김창선 PD.
김창선 PD.

감시체계에서 환자 정보가 누락된다는 점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간 수만 명의 온열질환 환자 정보가 축적됐지만 정부의 폭염 예방정책 근거로 삼기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감시체계 도입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확한 열사병 환자 정보를 수집하려면 응급실에 온 뒤 하루나 이틀이 지나 피검사 등을 거쳐 확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온열질환자 작성 의무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도 없이 병원이 그런 노력까지 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온열질환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증상을 보였는지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과거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등록됐던 환자가 다른 해 여름 또 온열질환에 걸렸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지난해까지는 집이나 도로 등 실내ㆍ외 공간에 대한 분류만 할 뿐 환자가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해당 지역 폭염경보가 실제 예방 효과가 있었는지, 지자체 관리에 사각지대는 없었는지 등을 전혀 파악할 수도 없었다. 질본 관계자는 “관련된 문제 제기가 있어 2019년부터는 증상 발생지를 표기하도록 교정했다”고 말했다.

◇감시체계 도입 9년,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질병관리본부 연합뉴스
질병관리본부 연합뉴스

지난해 폭염은 예상 수준을 넘어선 피해를 남겼다. 그 기간 폭염 피해 현황 집계를 사실상 도맡았던 곳은 질본의 미래질병대비과였다. 이 과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부서 출범과 동시에 역대 최악의 폭염에 정면 대응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질본에 따르면 온열질환 감시체계 관련 인력이 처음 배치된 것은 2010년이다. 초기만 해도 학계와 의료계 전문가를 모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서유럽 폭염 사례를 기초로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정부의 선제 대응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9년간 감시체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미래질병대비과에 따르면 현재 소속 직원은 총 8명. 하지만 이들이 담당하는 업무는 감시체계 관리만이 아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인 감염병이나 만성질환이 아닌 전자기기 사용 증가에 따른 질병, 사회적 빈부격차에 따른 질병 등 새로 생길 질병을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기획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국민들의 우려가 큰 미세먼지 건강 영향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감시체계라는 폭염 지수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폭염경보라도 발령되면 모든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미래질병대비과 관계자는 “사실 폭염에 관한 주관 부처는 행정안전부인데 어쩌다 보니 (우리 과에서 작성하는) 감시체계 숫자에 더 관심이 쏠렸다”며 “따로 배정된 예산이 없어 인센티브도 지급하지 못하는데 응급실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감시체계를 작성해 주고 있는 상황이니 (온열질환자 누락 등을) 지적하거나 부담주는 일은 가급적 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온열질환자 대책 마련을 위해 민간이 직접 환자연구에 나서기도 한다. 류현욱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프리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구 지역은 온열질환자가 많아 원인 분석을 위해 대구 5개 의료기관이 2014년부터 열사병 환자들의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발생한 실제 현장 상황을 모른 채 분석을 한다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며 환자 정보 축적 및 연구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보건의료계에선 지금이라도 감시체계를 개선하고 관련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당장 감시체계 관리 인력 증원이나 비용 지원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관리 및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며 “특히 정기적인 환자 데이터 질 관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4회(마지막 회)에서 계속됩니다.

한국일보 폭염기획 특별취재팀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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