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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카톡방담] 수출규제에 북한카드 엮은 일본의 혼네(속마음)

입력
2019.07.13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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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26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26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본이 지난 4일부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전격 발동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9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소재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 긴급안건으로 올려 국제여론전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한 보복 철회는 물론 정부간 협의 제안조차도 거부하며 추가보복까지 예고했다. 경제보복의 빌미를 제공했던 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다루자며 일본이 내놓은 3국 중재위원회 구성안에 우리 정부도 수용불가 방침을 밝히고 있어 당분간 협상의 탈출구조차 안보인다. 한일 경제전쟁 사태의 쟁점을 체크하기 위해 본보 외교안보팀과 도쿄특파원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수출규제가 보복이 맞나요.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이죠. 또 사태가 왜 이렇게 커졌나요.

고구마와 사이다(사이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번 조치의 배경에 신뢰훼손을 제기하면서 거론한 것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입니다. 이걸 한국이 안 지킨다는 이유로 규제 강화를 취한 것이니까 보복 성격임을 자인했다고 봅니다. 일본 언론들도 보복(대항) 조치라고 쓰고 있고요. 다만 명목상 규제를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이지 당장 피해가 나타나진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수출허가 심사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따라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고 수출금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큰 사안이죠. 배경이라면 지난해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3국이 포함된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를 한국이 수용하라는 것인데요. 일본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라 여기는데, 한국은 그 시대의 정의, 시대정신에 따라 기존 약속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일본이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장에서 아주 강한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봅니다.

올해는 뚜벅이=갑작스런 조치가 아니라 이미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일본은 검토를 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전문가들이 다수 있습니다. 판결 직후인 작년 11월부터 한일 무역 경제 관련한 조치들을 조금씩 검토하고 있었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 정부가 발빠른 대처와 상황파악을 미처 못한 건 ‘설마 정상국가인 일본이 그러겠어?’ 하는 생각이 컸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정부도 올 초부터 일본 움직임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하곤 있습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판결 이후 그룹 차원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를 논의하긴 했지만, 설마 그러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고 합니다. 일본에도 피해가 가기 때문이죠. 정부나 재계나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읽지 못했다는 얘기죠. 어찌보면 그만큼 일본의 조치가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란 얘기고요.

[저작권 한국일보] 일본의 경제보복 전후 양국 움직임 일지.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일본의 경제보복 전후 양국 움직임 일지. 박구원 기자

불나방=청와대와 정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일본엔 유독 우리 정부가 강하게 나갔는데 이번 사태는 해법이 있나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당나귀)=갈등의 뿌리가 깊은 만큼, 단번에 풀리기는 쉽지 않은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좀더 긴 호흡을 갖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상황인거죠. 아베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우리 재계를 통해 경제보복 가능성을 전달해 왔고, 그런 만큼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준비를 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청와대의 대응은 미온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강경대응으로 볼 수 있어요. 경제적 피해를 보더라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죠. 이번 참에 의존도를 낮춰 탈(脫) 일본을 하겠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 대응방안과 관련해선 먼저 패를 보여줄 필요는 없지요.

도렴동 흰둥이=대응이 두 갈래로 나뉘는 모습입니다. 수출규제는 이 조치의 불법성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피력하는 여론전 방식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입니다. 9일 WTO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가 일본 보복 조치의 부당성과 반(反)자유무역 성격을 공개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했죠. 하지만 갈등의 본질인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선 무대응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정부는 한일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공동 배상하자는 6·19 제안을 일본에 계속 설득해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설득을 위해 국내적으로 이 안을 진전시킨다거나 일본과 협의하는 움직임은 안 보입니다. 수출규제 대응이 당장 급한 사안이라 해도 본질 해결없이는 갈등이 계속해서 확전할텐데 말이죠.

불나방=아베 총리는 급기야 수출규제가 북한과 관련성이 있다는듯한 발언을 했어요. 전략물자가 흘러 들어가는 게 맞는 얘기인가요. 대북제재 문제까지 들고 나와 안보이슈까지 건드린 배경은 무엇인가요.

마음은 콩밭에=한국이 전략물자를 밀수출하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사실 관계가 다른 수치들을 제시한 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요. 일본 내에서조차 자유무역 정신에 반하는 조치이자 억지라는 비판이 나오자, 여론을 관리하기에 좋은 '북한 카드'를 꺼낸 것이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인사한 뒤 이동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인사한 뒤 이동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이다=아직은 일본 정부가 관련 증거나 설명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어요. 다만 아베 내각과 가까운 자민당 강성 정치인들이 방송에서 관련된 언급을 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정부가 나서지 않자, 소위 현 정부와 가까운 산케이(産經)신문과 계열사인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한 전략물자 부정 수출 적발 자료를 가지고 마치 불법적으로 북한에 전략물자가 흘러 들어간 것인양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 공개된 내용이고 우리 정부가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방증인데 말이죠.

불나방=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을 꽤 탄탄히 준비해왔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사이다=북한문제를 끄집어 낸 것도 WTO에서 안전보장상 이유로 한 무역제재는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틈을 노린 것인데요. 이미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인식되는 이상 분명한 증거가 없으면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다만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국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간 약속을 흔들려고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거기다 북한은 핵·미사일 위협국이고 납치문제도 걸려있는 국가입니다. 또 전략물자 중 불화수소는 1995년 도쿄 지하철 테러사건 때 사용된 사린가스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일본 국민들의 가장 두려워하는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나귀=지일파 인사들은 한결같이 일본이 이렇게까지 나올 정도면 치밀한 계산과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봐야 한다며 우려를 더합니다. 일본 특유의 혼네(本音·속마음), 다테마에(建前·겉마음)까지 언급하며 이번엔 혼네를 제대로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있죠. 하지만 지난 1일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명분이 오락가락 하는 걸로 봐서는 정말 치밀한 준비를 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일본외교의 나쁜 습성인, 가상의 적을 상정해 때림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이지메(따돌림) 전략의 일환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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