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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지미 카터의 ‘불안감 연설’(7.15)

입력
2019.07.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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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불안감 연설'을 했다. 유튜브.
1979년 7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불안감 연설'을 했다. 유튜브.

1979년, 임기 3년 차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를 괴롭힌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당내 거물 에드워드 케네디의 견제와 공화당의 강세로 의회의 정치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과 이스라엘 지원국 수출 통제로 경제도 최악이었다. 상반기 가솔린 가격은 55%가 급등했고 인플레율은 12~13%에 달했다. 카터 지지율은 역대 바닥 수준인 25% 안팎에 머물렀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흘 휴가를 보낸 뒤인 그해 7월 15일, 카터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 TV 연설에 나섰다. 그는 만 3년 전 자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으며 국민에게 약속한 일을 환기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시민 여러분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꿈을 공유하며, 힘과 지혜를 나누겠다”던 약속. 그 약속대로 그는 휴가 기간에 성경과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같은 책을 읽었고, 경영자와 교사, 노동자, 목사 등 각계 시민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당면의 위기(경제 위기)가 아닌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평범한 방법으론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감의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기는 우리의 영혼과 정신의 심장을 타격하는 위기입니다.(…) 성실한 노동과 강한 가족애, 결속력 있는 공동체, 신에 대한 믿음을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의 시민)은 어느새 자기 방종(self-indulgence)과 소비주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이제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소유와 소비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종교적 열정으로 공동체의 가치와 정신력, 자신감의 회복을 역설한 그의 연설을 미국 시민 6,500만명이 시청했다. 그는 ‘불안감(malaise)’이란 말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불안감 연설(malaise speech)’이라 불린 그 연설은, 시청률만큼이나 호응도 커서 지지율이 단번에 11~12%가 급등했고, 지지 편지가 백악관에 쇄도했다. 한 시민은 “연설에 고무돼 출퇴근용 모페드를 산 뒤 휘발유 소비량을 75%나 줄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말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가 터졌고, 이듬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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