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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조국 법무’ 카드의 빈곤한 상상력

입력
2019.07.0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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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완결은 국회 몫, 조국 역할 없어

집권 중반기 인사 헛발질은 레임덕 직결

‘사람보다 원칙ㆍ관행’ 확립하는 개각 돼야

조국(오른쪽)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오른쪽)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이벤트’에 가려 잠시 묻혔지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에 앉히려는 청와대 의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하순 이 카드가 불거진 후 야당이 즉각 반발하고 여당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되는 등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는데도 본인은 입을 닫고 청와대도 강 건너 불 보듯 방치했으니 말이다. 예전엔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다. 청와대발 조국 장관 카드는 그냥 여론을 떠보려고 띄운 애드벌룬이 아니라, 임명권자의 의중 관철을 위한 큰 그림의 시작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와 민주당 등 여권 주변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런 의심은 굳어진다. 적격성이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부정적 목소리는 거의 없고 ‘지금 여기에’ 조국이 있어야 하는 이유와 찬사만 무성해서다. 요지는 검찰 개혁이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핵심 과제이고 관련 법안이 국회로 넘어가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채택된 만큼 개혁의 연속선상에서 조 수석이 법무부장관을 맡아 일을 마무리하는 게 수순이라는 것이다. 전문성과 시대정신, 추진력 등에서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이 몸을 낮춘 가장 큰 이유는 문 대통령이 최적임자로 그를 점찍고, 본인도 그 결정에 동의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권이 이런 주장을 계속하려면 ‘고백 의식’ 정도는 거치는 것이 정치 도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7월 권재진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자 민주당은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자리에 최측근 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하며 최측근 공안통치에 따른 총선ㆍ대선 불공정성을 경고했다. 8년 전 여름과 지금,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그들 눈에 하나는 정의를 독점한 촛불정권 인사고, 하나는 공안 보수정권의 정권 장악 음모다. 그들 귀엔 당사자가 검찰 개혁 등 사법 개혁 임무만 끝내면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한 얘기만 사실이고, 한국당의 반대는 기우나 몽니일 뿐이다.

한국당이 민주당의 이중잣대를 아프게 꼬집지 않는 것은 뜻밖이다. 2006년 7월 당시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제기되자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국민 선전포고’ 운운했다가 권재진 경우 때 입장을 바꾼 것이 민망해서인가. 하지만 남이 하면 무조건 ‘선전포고’라고 매도하는 버릇은 이번에도 도졌다. “부실 인사 검증과 청와대 특감반 사찰 의혹 등으로 진작 경질됐어야 할 사람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헌법 질서 모독이고, 보복정치ㆍ공포정치로 우파를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선전포고”란다.

민주당의 자가당착과 한국당의 적반하장을 민망하게 만들려면 청와대가 ‘조국’ 카드를 부인하고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껏 드러난 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나 인사 방식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판문점 이벤트의 공을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돌리며 조연을 자처한 그다. ‘운전자가 구경꾼으로 전락했다’는 보수세력과 언론의 비아냥거림이 예상됨에도, 큰 목표를 향한 것이라면 그런 저항이나 굴욕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뚝심 말이다. 이런 고집은 얼마 전 사회원로와의 만남에서 적폐 청산과 협치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은데서, 나아가 국회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이 2년 동안 15명에 이른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문 대통령 스타일대로라면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은 강행 가능성이 높다.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데다 “야당이 반대하는 사람일수록 일을 잘한다”는 생각도 깊다. 그러나 조국 카드는 던지는 순간 여야 파행-충돌-강행-대치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간신히 패스트트랙에 올린 사법 개혁 입법은 물론 정국 앞날마저 불투명해진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이벤트에 대해 “기존 외교문법과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우리 정치에도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개각부터 문 대통령은 좋은 관행을 만드는 창의적 상상력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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