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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정반대 선택을 한 ‘또 다른 나’는 행복할까.

입력
2019.07.0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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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테드 창 ‘숨’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생을 단어 하나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당장 생각나는 대답은 선택이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부모의 선택으로 세상에 던져지고 나서 자의식이 생기고 나면,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는 아주 사소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선택도 있고, 진학이나 취업 또 연애나 결혼 같은 삶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결정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선택의 결과가 보인다. 안타깝게도 선택의 결과는 좋을 때보다 나쁘거나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생각한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그런데 만약 다른 선택의 결과를 슬쩍 엿볼 수 있다면 어떨까. SF 작가 테드 창이 바로 이런 일이 가능해지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았다.

과학자 일부는 우리 우주와는 별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른바 다중 우주(Multiverse) 가설이다. 과학자마다 떠올리는 다중 우주의 모습은 다르다. 그 가운데 소설이나 영화에서 제일 선호하는 다중 우주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평행 우주다. 그곳은 우리 우주와 닮았지만, 명백히 다르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것과 정반대 선택을 한 삶이 펼쳐지는 우주가 존재한다. 매 순간의 선택마다 새로운 우주가 펼쳐질 테니, 이론적으로 그런 평행 우주는 무한히 많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사는 수많은 나를 한번 상상해 보라. 하지만 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와는 결코 연결될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돌파구가 생겼다. 특별한 장치(작품 속 ‘프리즘’)를 통해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다른 우주와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예를 들어 고민하다 직장을 옮겼지만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정반대 선택을 한(이직을 포기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심지어 또 다른 나도 동의한다면, 다른 세계의 나와 음성이나 영상으로 대화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이 연락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옛 연인이랑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런 경우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또 다른 세계에서는 사고를 피한 그/그녀와 계속해서 살고 있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도 등장한다. “살아있는 그/그녀와 연락할 수 있도록 해드릴까요?”

테드 창은 이런 요지경 같은 세상을 창조하고서, 그 안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들이민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했던 중요한 선택의 결과를 모조리 검토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사람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은 어떻게 달라질까. 테드 창이 최근에 펴낸 소설집 ‘숨’에 실린 최신작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의 대답은 뜻밖이다.


 숨 

 테드 창 지음ㆍ김상훈 옮김 

 엘리 발행ㆍ520쪽ㆍ1만6,500원 

테드 창은 “세계 최고의 현역 SF 작가”로 꼽힌다. 1990년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데뷔하고 나서 단편집(‘당신 인생의 이야기’) 딱 한 권만 펴낸 작가 경력을 염두에 두면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이다.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2016)로 만들어지면서 SF 팬이 아니었던 독자에게도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숨’은 그가 1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단편집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 쓴 아홉 편의 소설을 모았다. 이 책을 통해 테드 창은 ‘소설가’에서 ‘과학자-예술가’의 정체성에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하다. 소설보다는 자신의 상념을 늘어놓은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이 그 증거다. 테드 창의 좀 더 좋은 소설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아쉬운 행보다. 그의 다음 책을 또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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