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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청소년 범죄 대책, 현실과 증거에서 나온다

입력
2019.06.2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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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원룸에서 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10대 4명이 원룸에 들어가는 모습. 광주경찰청 제공
9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원룸에서 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10대 4명이 원룸에 들어가는 모습. 광주경찰청 제공

지난 6월 9일 광주에서 청소년 4명이 친구를 집단 폭행하여 숨지게 한 사건으로 청소년범죄자에 대한 엄벌주의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 정부에서 범죄 및 형사정책에 대한 국민 법 감정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1호 답변은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 이후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요구에 관한 것이었고, 이후 청소년의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 폐지와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엄벌주의 여론에 부응하여 정부와 국회는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를 골자로 하는 몇 개의 법률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입법안들은 청소년 범죄의 수준과 특성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상황인식을 담고 있다. 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으며, 촉법소년의 범죄가 늘어나 소년범죄가 저연령화 되고 있고, 소년법이 청소년을 관대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청소년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정말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증거기반 정책’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증거기반 정책이란 새로운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이 정책의 전제가 되는 사실과 도입하고자 하는 정책의 기대되는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용어이다. 그러나 과연 최근 청소년 범죄자의 강력한 처벌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개정안들이 증거에 기반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증거기반 정책수립을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인 청소년 범죄의 수준을 보여주는 공식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범죄 발생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 연구자, 실무가에게 가장 널리 활용되는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범죄통계 자료집인 ‘범죄분석’의 청소년 범죄 통계는 2014년 이후 촉법소년을 제외한 14세 이상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만 집계하고 있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전체 청소년 범죄 수준을 보여주는 통계가 아니다. 그러나 통계 이용자들에게 이러한 통계수집 기준 상의 변화에 대해 공지해 주지 않아 통계수치 활용과 해석 시 엄청난 오류를 낳고 있다. 2014년 이후 촉법소년이 집계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청소년 범죄의 양적 증감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2008년과 2018년의 자료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되며, 이 자료로는 청소년 범죄의 저연령화나 촉법소년의 증가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전체 크기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치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청소년 범죄와 관련된 증거기반 정책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현재 소년법과 개인정보보호법 하에서는 청소년 범죄자의 재범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자의 처우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처분이 종료된 이후 일정한 기간 내에 대상자들이 재범을 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소년보호관찰에서는 청소년이 보호관찰기간 중 재범을 했는지 여부(보호관찰기간 중 재범), 소년보호에서는 소년원을 출원한 청소년들이 다시 소년원에 들어왔는지 여부(재입원률) 등의 지표로 재범률을 대체하고 있다. 재범율과 재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현재 청소년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개입의 효과성과 새롭게 도입하고자 하는 정책수단의 기대되는 효과를 파악하는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증거기반 청소년 범죄 정책의 수립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청소년 보호나 일벌백계라는 피상적인 주장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형사정책의 방향이나 구체적 개입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시급히 해야할 과제는 청소년 범죄통계 전반의 문제점을 검토해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형사사건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범죄통계작성규칙을 검토해 소년보호 사건과 소년형사 사건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청소년 범죄자 처리절차의 특수성에 맞게 통계작성 규칙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경찰이 입건하지 않고 바로 법원에 송치하는 촉법소년에 대해서도 범죄통계를 작성하여 전체 청소년 범죄의 수준과 양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범죄 통계가 이용자에 의해서 잘못 활용되거나 해석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통계 이용자에게 통계 작성기준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을 배포하고, 작성기준의 변화가 있는 경우 즉시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원천자료의 공개를 통해 관련 전문가나 연구자가 자료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료의 일관성, 정확성, 신뢰성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와 정책형성 목적을 위해서 소년사건에 대한 자료접근과 재범여부의 추적이 가능하도록 근거법률을 마련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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