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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노포기행] 벽면 빼곡히 LP 카세트 테이프… 40년째 아날로그 감성이 흐릅니다

입력
2019.06.29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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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유일 레코드 가게 명곡사 

 팝ㆍ클래식ㆍ가요 음반 수천장 

 세월의 흔적 가득한 ‘보물창고’ 

40년을 이어온 음반가게인 명곡사 이석범 사장이 자신의 애장품인 프랑스 연주자 앙드레 레비의 첼로 앨범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40년을 이어온 음반가게인 명곡사 이석범 사장이 자신의 애장품인 프랑스 연주자 앙드레 레비의 첼로 앨범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음반과 저는 천생연분 같아요.”

강원 춘천시내 번화가인 중앙로 명동에서 춘천시청으로 이어지는 골목. 클래식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 담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간판마저 품격이 느껴지는 작은 가게 앞 스피커에선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 나온다. 춘천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레코드점인 명곡사다. 작은 음반가게는 이렇게 40년째 한결같이 손님을 맞고 있다.

춘천에서 ‘명곡사 아저씨’로 통하는 이석범(73) 사장은 “총각 시절 전축 영업을 통해 익힌 노하우를 살려 먹고 살자고 차린 가게가 생업이 됐다”며 “레코드는 내 운명인가 보다”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춘천시 청사가 헐린 뒤 새 건물이 들어섰고, 맞은 편 소양극장은 피카디리로 이름을 바꾸더니 문을 닫았죠. 맛집으로 소문난 전골집 등 식당들도 하나, 둘 이 골목을 떠났고요.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제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한걸요.”

70대 노사장의 멋쩍은 소개를 받으며 들어선 20㎡ 남짓한 레코드 가게 내부는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빼곡하게 벽면을 채운 수천장의 카세트 테이프와 LP판, CD, 악보, 전축을 닦는 브러시까지 과거의 때가 묻지 않은 게 없다. 올드팝과 클래식, 가요, 가스펠, 뽕짝, 최신 유행곡을 망라한 음악박물관에 온 느낌이랄까. 인위적 복고가 아닌 과거의 흔적 그 자체다. “세월이 지나면서 풍성했던 머리 숱은 줄고 주름은 늘었지만 하나, 둘 모아둔 음반이 천장에 닿을 정도가 됐다”는 게 이 사장의 얘기다.

음반업계에서도 레코드점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 작은 가게는 소중한 존재다.

이 사장은 2년전 음반유통 회사인 유니버설뮤직코리아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꾸준히 거래를 이어가는 고마움은 물론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이어가는 그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 가게에서는 미국 힙합의 대부 카니예 웨스트의 데뷔앨범과 1971년 발매돼 금지곡이 됐다 해금된 아픈 과거를 간직한 김민기의 ‘아침이슬’ 등 이젠 고전이 된 앨범을 다수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레전드 밴드인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이 내놓은 명반과 팻 분의 크리스마스 캐럴, 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뉴 에이지 음악 등 수집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레어 아이템’들도 진열장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 사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 음반은 프랑스 뮤지션인 앙드레 레비의 무반주 첼로 연주앨범이다. 이 곡을 LP로 들으면 진정한 현악기 선율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음반가게인 명곡사에는 최신 유행곡은 물론 올드팝에서 클래식, 가요, 뽕짝까지 수천장의 앨범을 만날 수 있어 작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음반가게인 명곡사에는 최신 유행곡은 물론 올드팝에서 클래식, 가요, 뽕짝까지 수천장의 앨범을 만날 수 있어 작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전국 모든 레코드점이 그렇듯 명곡사 역시 1980, 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40~60대들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즐길 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청춘들이 이곳에서 감성을 채웠고, 당시 성업하던 음악감상실 DJ, 방송사 관계자들도 단골손님이었다. 꼬깃꼬깃 천원짜리 몇 장을 모아 테이프를 사려는 중고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사장님이 직접 공페이프에 노래 10여곡을 녹음해 맞춤형 앨범을 만들어주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곳도 명곡사다.

“이런 인연으로 지금도 춘천을 떠나 수도권, 충북 청주와 전북 정읍 등지에 자리를 잡은 옛 고객들의 주문이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는 게 이 사장의 얘기다. 또 사춘기 시절 헤비메탈 음악에 빠져 이곳을 드나들던 소년은 ‘소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돼 활동하고 있다.

35년전 강원대 교육방송국(VOKU) 시절 인연을 맺은 최영철(55)씨는 “크지는 않지만 여러 장르의 음반을 갖춘 알찬 가게였던 기억이 난다”며 “시간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37년전 ‘팝의 황제’라 불리던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스릴러(Thriller)’ 등 화제의 음반이 출시되면 작은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소니 워크맨과 삼성 마이마이 등 휴대용 미니 카세트 등장과 함께 매출이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 음반시장의 전성기였던 때다. 이영진(47)씨는 “세뱃돈을 받아 요즘 표현으로 노르웨이의 국보급 밴드인 아하(A-Ha)의 음반을 샀던 기억이 있다”며 “아하는 당시 10대 여학생의 우상이었다”고 여중생 시절 추억을 소환했다.

유명가수의 콘서트와 뮤지컬 등 각종 공연의 티켓을 판매하는 예매처에서도 명곡사는 빠지지 않았다. 지역 내 음악과 관련된 모든 행사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명곡사 이석범 사장이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존 덴버의 앨범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명곡사 이석범 사장이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존 덴버의 앨범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음악과 함께한 이 사장의 대중음악에 대한 지식은 여느 평론가 못지 않다. 이젠 기억 속 어렴풋이 자리한 어떤 뮤지션과 노래 얘기를 꺼내도 이야기를 술술 이어간다.

그에 따르면 1970, 80년대까지 국내시장에선 스웨덴 출신 혼성그룹 아바와 남매듀엣 카펜터스, 스모키 등 경쾌하면서도 감미로운 팝송의 인기가 많았단다. 이 사장은 이들 그룹과 밴드는 유독 한국에서 사랑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물론 세계인의 가슴속에 자리한 비틀즈와 퀸의 인기도 대단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그 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메탈리카와 스키드로우, 헬로윈 등 강렬한 헤비메탈에 빠져드는 10~20대 남학생들이 늘기 시작했고, 댄스와 힙합, 랩, 레게까지 장르가 다양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40년 내공이 응축된 설명이다.

이 사장은 보이 그룹의 원조격인 뉴 키즈 온 더 블록 열풍도 소개했다. 그는 “대니 우드니, 조나단, 조던 나이트 형제니 멤버 이름을 줄줄 외우는 여학생들로 인해 포스터와 앨범이 동이 날 정도로 뉴 키즈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뭐니 뭐니 해도 그가 꼽는 음반시장의 사건은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등장이다. “1992년 여름 ‘난 알아요’를 계기로 음반 시장이 확 바뀌었어요. 팝보다 가요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진 거죠. 이듬해 ‘하여가’와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놓는 곡마다 히트를 치자 우리 가게 매출도 많이 늘었죠.”

서태지에 이어 플래티넘 앨범(100만장 이상 판매된 음반) 목록에 오른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 HOT의 앨범도 이 사장이 기억하는 히트상품이다.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음반가게인 명곡사에는 올드팝에서 클래식, 가요, 뽕짝까지 수천장의 앨범을 만날 수 있어 작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음반가게인 명곡사에는 올드팝에서 클래식, 가요, 뽕짝까지 수천장의 앨범을 만날 수 있어 작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접어 들어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원 등장과 함께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급격이 침체됐다. 손쉽게 온라인에서 곡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레코드 가게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레코드 업계의 몰락을 더욱 부추겼다.

명곡사 역시 2000년대초 디지털 음원에 손님을 조금씩 뺏기더니 몇 년 뒤에는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한 때 20여곳이던 주위 음반가게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10년전부터는 홀로 남았다. 단 한 명의 동업자도 남지 않은 셈이다. “레코드 업계 불황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 사장은 매일 오전 10시30분에 출근해 12시간 가량을 꼬박 작은 가게에서 지낸다.

40년째 아내가 싸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잠시도 삶의 터전을 비우지 않는다. 집안의 부득이한 애경사와 추석, 설날 등 명절이 아니면 문을 닫는 일도 거의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명에게라도 좋은 음악을 전하기 위함이다. 음반을 사지 않더라고 가게 앞을 지나다 나오는 음악을 잠시라도 들어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40년을 이어온 노사장의 고집이자 철학이다. 문화의 도시라는 춘천에 레코드 가게가 없어서 되겠느냐는 스스로의 다짐도 묵묵이 작은 공간을 지키는 힘이 됐다.

“젊은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어렵잖아요. 여기 아니면 음반 살 곳이 없으니까.” 순간 음반 장사가 천직이라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사장은 “최근 웃을 일이 생겼다”고 했다.

복고 트렌드가 관심을 받으며 얼마 전 골동품 가게와 같은 레코드점으로 지상파 방송에 소개된 데 이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주문이 오고 있는 것. ‘오래 오래 음반가게로 남아 달라’는 응원 메시지도 받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가수 나얼이 이곳 명곡사를 자주 찾는 단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온라인 덕분에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며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가 싶다”고 아이러니한 느낌을 표현했다.

요즘 LP가 다시 주목 받는다는 소식은 더 반갑다. 완전히 잊혀진 것으로만 알았는데 마니아층을 위해 일부 공장이 판을 찍기 위해 가동에 들어갔다는 얘기에 힘이 절로 난다. “앞으로 바람이요? 음반시장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는 거 말고 또 있겠어요. 허허.”

사춘기 시절 음악에 빠져 작은 음반가게를 드나들던 소년에서 지금은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된 소보(오른쪽). 명곡사 제공
사춘기 시절 음악에 빠져 작은 음반가게를 드나들던 소년에서 지금은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된 소보(오른쪽). 명곡사 제공

춘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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