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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쿠르디 사진, 미국 ‘반이민’ 장벽을 강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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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쿠르디 사진, 미국 ‘반이민’ 장벽을 강타하다

입력
2019.06.26 18:16
수정
2019.06.26 22: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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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쿠르디’에 반이민 정책 회의감 폭발

24일 월요일 멕시코 접경지역인 리오그란데 강에서 엘살바도르 국적인 여자아이 발레리아와 그의 아버지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6)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들은 미국 텍사스로 불법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24일 월요일 멕시코 접경지역인 리오그란데 강에서 엘살바도르 국적인 여자아이 발레리아와 그의 아버지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6)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들은 미국 텍사스로 불법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익사한 엘살바도르 국적의 여자아이와 아버지의 사진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말로만 전해졌던 멕시코 국경지대의 처참한 현실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2015년 시리아 난민을 거부하던 유럽의 각성을 불러일으킨 쿠르디(사망 당시 3세)의 사망 사진을 연상시켰고, 강경한 반 이민 정책을 이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개심을 바라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을 통해 공개된 사진에는 전날 숨진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과 남성의 셔츠 속에 안겨 있는 두 살배기 여자아이의 마지막이 담겼다. 미-멕시코 국경지대 리오그란데 강기슭 습지에서 24일 발견된 이들의 모습은 끔찍했던 최후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둘 다 머리가 물속에 잠긴 채였고, 딸은 아버지의 목을 팔로 꼭 안은 상태였다.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고 싶어 했던 미국땅(텍사스주 브라운스빌)으로부터 고작 1㎞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사진 속 부녀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23개월 된 그의 딸 발레리아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부녀는 발레리아의 엄마 타니아 바네사 아발로스(21)와 함께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가기로 결심하고 4월 3일 고향인 엘살바도르를 떠났다. 멕시코 남부 국경 타파출라의 이민자 보호소에서 2개월을 머문 뒤 23일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헤엄쳐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기로 했다.

발레리아를 안고 먼저 강을 건넌 라미레스는 딸을 강둑에 앉혀놓은 뒤 다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나 2살 아기를 혼자 남겨놓은 게 화근이 됐다. 아빠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발레리아가 강으로 뛰어들었고, 놀란 라미레스는 급히 돌아와 딸을 붙잡아 옷으로 감쌌지만 급류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마 후 강 건너에 홀로 가족을 지켜보던 아발로스는 비명을 지르며 딸과 남편의 비극을 목도해야 했다.

부녀의 마지막을 촬영해 세상에 알린 이는 멕시코 일간 하로르나다의 사진 기자 훌리아 레두크이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전해 들은 그가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어 신문에 실렸고, 하루 만에 전 세계로 슬픈 부녀의 사연이 전파된 것이다. 레두크 기자는 자신의 사진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자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장면이 (불법 이민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세상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2015년 9월2일(현지시간) 터키 남서부 물라주 보드룸의 해안에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에이란 쿠르디(3)의 시신을 터키 현지 경찰이 수습하기 전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쿠르디는 보드룸을 떠나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던 중 에게해에서 배가 침몰해 익사했다. AP 뉴시스
2015년 9월2일(현지시간) 터키 남서부 물라주 보드룸의 해안에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에이란 쿠르디(3)의 시신을 터키 현지 경찰이 수습하기 전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쿠르디는 보드룸을 떠나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던 중 에게해에서 배가 침몰해 익사했다. AP 뉴시스

경악한 미국 언론들은 이 사진에 ‘미국판 쿠르디’라는 명칭을 붙였다. 2015년 9월 가족과 유럽으로 건너가려다 익사한 채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 온 세 살 남자아이 에이란 쿠르디의 사진은 유럽의 반 이민 정서에 경종을 울렸다.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당시 애도를 표했고, 실제 반난민 정책을 폈던 일부 국가들은 일시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CNN은 “사진이 엄청난 연민과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쿠르디 사진이 공개됐을 때처럼 불법 이민자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이민을 해야하는 이들의 현실이 사진 한 장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중남미계 의원단체인 히스패닉 코커스의 호아킨 카스트로(민주ㆍ텍사스) 의원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사진”이라며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 정부와 의회의 다른 접근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국판 쿠르디 사진으로 강경 일변도였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의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이 (이민자 수용을) 거부하면 할수록 사막이나 (강을)건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증가한다”라며 미국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도 트위터에 “트럼프의 비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인 정책의 결과”라고 비판했고, 베로니카 에스코바르 민주당 하원의원(텍사스)은 “연약한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연방 하원은 25일 국경 지대 이민자 수용시설의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 45억 달러(약5조2,170억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공화당이 우세한 상원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미국이 반 이민 정서에서 조금씩 돌아서는 분위기는 적잖이 감지된다.

[저작권 한국일보]미국의 반이민 정책 추진 (2019년) 주요 일지. 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미국의 반이민 정책 추진 (2019년) 주요 일지. 김경진 기자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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