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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스탄 게츠와 쳇 베이커

입력
2019.06.2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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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데이브 젤리의 ‘Nobody Else But Me: A Portrait of Stan Getz’(안나푸르나, 2019)는 스탄 게츠가 1964년에 출반한 앨범 ‘나 말고는 아무도’를 그대로 책 제목으로 삼았다. 재즈에 무관심한 독자는 ‘스탄 게츠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외면하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당장 이 책을 구입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고른 스물여섯 명의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바친 ‘재즈 에세이’(열림원, 1998)에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고 다양한 재즈를 탐닉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스코트 피츠제럴드야말로 소설(the Novel)이고, 스탄 게츠야말로 재즈(the Jazz)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즈에 대한 화제는 언제나 ‘재즈’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예컨대 이번 책에서는 역사학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역사 수정주의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미국 재즈는 주로 흑인 음악 전통 안에서만 해석되어 왔다. 반면 지은이는 미국 재즈의 또 다른 기원으로 “할리우드 뮤지컬과 브로드웨이 쇼”를 지목한다. 널리 알려진 재즈 명곡의 다수는 백인들의 오락 음악에서 파생했다. 때문에 일부 백인 인종주의 재즈 뮤지션 가운데 ‘재즈는 원래 백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색소폰을 갖게 된 스탄 게츠는 열다섯 살 때 프로 연주자가 되었다. 그가 이때 번 주급 35달러는 아버지의 주급보다 많았다. 이후 그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고, 평생 여성 편력과 폭력을 자제하지 못했다. “스탄은 유년기를 제멋대로 보냈다. 응석받이로 키운 어머니 때문에 망가진 재즈 음악가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조사를 연구가들에게 한번 부탁해야 할 듯하다. 얼핏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스탄 게츠,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다.” 이 명단에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쳇 베이커의 보컬과 고즈넉한 트럼펫 소리에 이끌려 제임스 개빈의 ‘쳇 베이커: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을유문화사, 2007)를 읽으려는 팬은 반드시 상처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부제에 ‘악마’라는 단어가 있지 않나!).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인기를 누렸던 쳇 베이커는 마약 사범으로 교도소와 재활 치료소를 드나들었고 여러 아내를 속이며 살았다. 어머니 베라 베이커는 어린 아들을 연인처럼 대우하며 키웠다.

스탄 게츠의 아버지는 인쇄업을 했으나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또 직업 음악가가 되려고 했으나 실패한 쳇 베이커의 아버지 역시 안정적인 직업이 없었는 데다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일찌감치 거두어버린 골디 게츠와 베라 베이커는 자신들의 장남을 ‘대리 남편’으로 삼았다. 스탄 게츠와 쳇 베이커는 양친의 부부애를 실감하지 못한데다가 긍정적인 아버지상(像)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두 살 터울의 스탄 게츠와 쳇 베이커는 이합집산이 일상인 재즈계에서 이례적으로 협연이 적었다. 두 사람은 이후 상대방의 악영향을 경계하면서 평생 서로를 멀리하고 싫어했다.

1954년 2월, 연주 여행 중에 마약이 떨어진 스탄 게츠는 약국에 들어가 한 손을 재킷에 넣고 권총을 잡은 흉내를 내며 종업원에게 모르핀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스탄 게츠는 이 범행으로 180일간의 징역형을 받았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재즈 뮤지션을 지망하는 어린 학생이 ‘나도 약쟁이가 되어야 하나요?’라는 요지의 편지를 그에게 보내왔다. 스탄 게츠는 유명 재즈 전문지에 공개 답신을 썼다. “이건 정신의 순수하고 간단한 퇴화, 도덕성의 결여, 성격적 문제이고, 제게는 있지만 그 친구에겐 없는 거예요.” 이 답신에는 자신에 대한 뼈아픈 회오와 재즈를 세간의 비난으로부터 지키려는 스탄 게츠의 진심이 담겨있다. 하지만 나는 스탄 게츠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파멸은 삶의 일부이므로 소거할 수 없고, 재즈도 상처 많은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재즈 명반이 마약의 구렁텅이를 가까스로 헤치고 나온 재기 활동의 결과물이다. 이런 게 재즈를 인간 감정에 가장 가까운 예술로 만들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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