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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딥페이크’의 충격

입력
2019.06.23 18:00
수정
2019.06.23 20:3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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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공식행사에서 술 취한 어투로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특검 수사 결과를 은폐하고 있다”고 연설하는 3분짜리 동영상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미 민주당은 이 영상이 영상속도를 늦추고 음성을 변조한 ‘조작 영상’임을 찾아내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영상 차단을 요청했다. 유튜브는 즉각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지만,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정보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하는 규정은 없다”며 거부해 논란이 일었다.

□ 요즘 화제가 되는 딥페이크(deepfake) 동영상과 비교한다면, 펠로시 조작 동영상은 수법이 너무 초보적이라 ‘조작’보다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조작 동영상을 뜻하는 신조어다. AI 기술 발전과 함께 동영상을 조작하는 기술은 진짜 동영상과 구별하기 힘든 수준으로 발전했으며, 관련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얼굴 사진 몇 장만 있으면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도 멀지 않다.

□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가는 ‘펠로시 동영상’ 소동을 계기로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를 여는 등 ‘딥페이크’ 관련 규제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유포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아직 해명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 긴장하는 모습이다. 미국 의회는 수개월간 전문가 토론을 거쳐 최근 딥페이크 규제 법안 3개 원칙을 정리했다. 첫째, 딥페이크 제작자는 반드시 동영상에 딥페이크임을 명시할 것. 둘째, 소셜미디어들은 딥페이크 동영상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것. 셋째, 법 위반 시 징역형을 포함한 엄격한 제재와 피해자 보상 등이다.

□ 사람들이 점점 뉴스 진위를 가리기 어려워지면서, 뉴스뿐 아니라 현실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관련 검색 기술과 규제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하지만 딥페이크를 제재한다는 구실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할 부분도 있다. 딥페이크 소재가 됐던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내가 하지도 않은 연설 동영상을 손쉽게 조작하는 시대”라며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확실한 토대가 흔들린다면 민주주의의 기반인 사상의 자유도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기술의 발전이 언론뿐 아니라 민주주의마저 뒤흔들고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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