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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균형] 야생동물과 질병

입력
2019.06.12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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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라는 질병이 꽤나 뜨겁습니다. 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질병입니다. Swine은 라틴어로 돼지를 뜻하지요. 이 바이러스는 혈관을 좋아해 감염 돼지의 온몸에서 출혈과 고열이 나타납니다. 현재 치료제나 예방접종 자체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이 병은 흔히 아프리카 중남부의 토착질병으로 주로 돼지류가 감염됩니다. 이 돼지류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혹멧돼지나 숲멧돼지, 덤불멧돼지 등입니다. 이 돼지종들은 토착질병과의 오랜 투쟁 속에서 면역을 얻어 질병에 걸려도 가볍게 지나가지요. 하지만 사하라사막 이남에만 고립되었던 질병이 사람에 의해서 아프리카 바깥으로 유출된 것입니다. 한편 멧돼지(Sus scrofa)라는 종을 가축화한 것이 현재 집돼지입니다. 그런데 이 집돼지들은 이 바이러스와 역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기에 진화적으로 질병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죠.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존속과 관련해 불필요한 숙주이므로 매우 강력한 병원성을 나타냅니다. 결국 멧돼지나 집돼지는 감염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증상이 나타나고 거의 100% 폐사하게 됩니다. 특히 전파 속도를 보자면 가공할 정도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북부 랴오닝성의 한 농가에서 최초로 이 질병을 확인한 후 9개월도 채 되지 않아 31개 성ㆍ자치구로 퍼졌습니다. 중국의 웬만한 성 하나는 한국 면적을 훌쩍 뛰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전파속도가 놀랍습니다. 올해 5월 북한 자강도 우시군의 돼지농장에서도 이 질병이 발생했다는 공식보고가 있었지요. 중국 국경으로부터 고작 10㎞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넓은 중국에서 이처럼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는 아마도 감염된 축산물의 중국내 유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8월 최초 검출 이후 올해 5월까지 소시지나 만두, 피자 토핑에서 바이러스 유전자 검출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즉 상당수 전파가 육가공품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죠. 밀반입된 육가공품이 음식물쓰레기를 통해 양돈업계로 들어가는 순간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될 우려도 있습니다. 여기에 야생멧돼지 개체군에 유입된다면 근절까지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까지도 지불해야 하겠죠.

멧돼지라고 하면 농작물 피해와 도심내 출현 등의 문제점만 대부분 떠올리겠지만, 생태계 내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실로 큽니다. 식물과의 관계를 보자면 종자를 퍼뜨리고, 숲 내 영양분을 전환시키며, 선택적 먹이활동으로 다른 식물종의 다양성 또는 과도한 증식을 억제하기도 하죠. 동물들과는 먹이를 두고 경쟁하고,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며, 크고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야생화된 집돼지를 제거한 후 7년이 지나자 산림 내 미소곤충류 밀도가 거의 2배로 올라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이 유입시킨 병원균으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영향 받은 사례들은 많습니다. 우리나라 생태계 내에서 균형을 조절하는 멧돼지에게 매우 큰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불법 축산물 반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들의 인식이 널리 퍼져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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