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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1997년 체제를 반성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

입력
2019.06.1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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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 행사를 열었다.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금반지와 동전 등을 함에 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8년 1월,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 행사를 열었다.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금반지와 동전 등을 함에 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가혹했던 IMF체제를 3년 만에 졸업한 대한민국은 대단했다. IMF 내부에서조차 그 조건이 너무 엄혹해서 살리려는 처방이 자칫 죽게 할 수도 있겠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 이후 IMF체제를 받은 국가들의 조건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부족한 외화를 채우기 위해 집안의 금붙이들까지 자발적으로 내다파는 나라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그걸 이겨냈다. 그런데 3년 만의 졸업이 정말 바람직했을까?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늘 앞으로만 내달리는 습속에 젖어 지나온 시간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일에 소홀한 듯하다.

1963년 대한민국의 개인소득은 고작 87달러였다. 그런데 30년 뒤에 OECD에 가입했다. 역사상 전무했고 아마 후무할 것이다. 놀라운 성취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자원도, 자본도 없는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교육 받은 질 좋은 노동력이 있었고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일으키겠다는 열망이 강했다. 우리 교육과 사회는 권리는 뒷전이고 의무만 강조했으며 사람들은 거기에 충실했다.

20세기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였다. 전반기의 전쟁과 후반기의 산업화는 철저하게 속도와 효율의 사회를 요구했다. 우리의 교육은 완벽하게 속도와 효율에 맞춘 것이었다. 거기에 잘살겠다는 강한 욕망이 합하여 초고속압축성장이 가능했다. 심각한 위기도 있었다. 오일쇼크, 월남 패망 등을 겪었고 중화학공업이라는 엄청난 도박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지금 돌아봐도 아찔한 일들이 많았지만 놀랍게도 모두 이겨냈다. 위대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취했다는 데서 자라났다. 20세기 후반 들어 속도와 효율의 틀은 깨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성공의 자기 신화에 빠져 오불관언이었다. 그리고 끝내 1997년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단순한 경제 위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회 구조 전체가 그 내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자도, 기업을 이끄는 회장이나 전문경영인도 책임지지 않았다. 서민이 낭비하고 노동자가 태만해서 초래한 위기가 아니었다. 늘 열심히 산 죄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부는 안주했고 유착했으며 더 큰 욕망의 실현에만 매달렸다. 엉뚱하게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었다. 고용은 불안하고 달러와 유가는 급등하며 지갑은 얇아지고 부동산은 폭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누군가. 악착같이 이 악물고 이겨냈다. 그 가혹한 구조조정을 온갖 대가 치르면서 겪어냈다.

문제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 하부 구조조정은 ‘마음껏’ 행사했다. 그러면 상부 구조조정으로 이행해야 하는 게 마땅했다. 바로 그 시점에 IMF체제에서 졸업한 것이다. 이런 말에 불쾌할지 모르지만 나는 차라리 좀 더 가서 상부 구조조정을 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부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자발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상부란 없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회생하고 온갖 기회를 독점하여 더 비대해졌으면서 이익은 독점했다. 힘없는 하부만 죽어라 고생한 셈이다. 그 이후의 흐름은 양극화의 심화와 분배의 왜곡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IMF체제의 초래가 야기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으며 그것을 길러왔고 인식은 부박했는지 따졌어야 한다. 과연 그런 적 있는가? 당장 고용이 불안하니 너도 나도 이른바 자기계발서에 빠져 매달렸다. 그런 책 수십 권 읽어도 살림살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경우 거의 없다. 왜? 우리가 겪었던 질곡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상부사회의 무지와 탐욕 때문인데 미국에서 건너온 자기계발서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거나 지적하지 않는 사회였다. 불행히도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회다.

입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면서 일자리 줄일 정당성 확보에만 혈안이고 정작 사고의 혁명은 없다. 늘 그런 식으로 살아온 관성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폐해에 대한 백서는 고사하고 여전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와 수치의 부분을 핀셋으로 집어내 왜곡하고 확대재생산하며 그 이유를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그리고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 그런 삶을 살아보지도 않는 자들이 그렇게 지껄인다. 물가와 임대료 상승은 외면한다. 상속세나 종부세가 경제를 위축시킨다고 엄살이고 증세에도 발목 잡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몰두한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치른 값을 짚어봐야 한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 생각은 그대로다. 도대체 언제까지 비싼 대가를 치른 과거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만 떠들 것인가. 그런 습관을 물려줄 수는 없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바뀌고 세상이 진화하며 미래가 달라진다. 20년 전에 치렀어야 할 상부 구조조정 제대로 하지 않은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그것부터 각성해야 한다. 본질은 외면하고 거죽만 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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