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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메멘토 모리!

입력
2019.06.1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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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시중은행 지점장을 하다가 5년 전 퇴직하신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이 마른 비둘기가 빌딩 옥상에 앉아 있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반짝이는 맑은 시냇물이 보였다. 탈진하기 직전인 비둘기는 “물이다!”고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시냇물로 돌진했다. 꽝!! 다음 순간 비둘기는 날개가 꺾인 채 처참한 모습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시냇물이 그려진 옥상 광고판에 부딪친 것이다. 그분이 사기꾼에게 속아 투자를 했다가 퇴직금을 모두 날렸다며 하신 말씀이다. 작년에는 주식 투자로 남은 돈마저 날리셨다고 한다. 올라가는 것이 힘들지 내려가는 것은 전혀 힘이 안들 줄 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너무 경사지고 가파르단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경구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Carpe Diem(카르페 디엠)!”이란 경구를 좋아했다. 나이 들어 예전보다 좀 더 현명해진 지금은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적어 놓았다. 나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는 점을 상기시켜 헛된 욕심과 오만을 경계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인데, 로마제국이 번성할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쟁 영웅들의 개선행진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영웅들이 개선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함성 속에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교만해지거나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소리꾼으로 하여금 개선 장군의 바로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도록 한 것이다. 개선 장군에게 메멘토 모리의 외침을 듣게 한 것은 “당신도 언젠가 살육 당한 적들과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르니 항상 경계하라”는 뜻도 있고 “전공으로 우쭐해 반란을 꾀하다 사형을 당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죽음은 밤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 이상으로 피할 수 없는 철칙이다. 죽음에 대한 대비는 하나밖에 없다. ‘선하고 겸손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오랫동안 성공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언제나 꼭대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르는 데도 익숙했지만, 내려가는 데도 탁월했다. 내려가야 할 시기가 오면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성큼성큼 걸어내려 갔다. 화려한 과거를 버려야 한다. 어제를 버려야 오늘을 맞이할 수 있고, 오늘을 버려야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현명한 자는 인생이 산을 타는 것처럼 계속 오를 수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미리미리 내려가는 길에 대한 준비를 해 놓는다. 오르면서 내려갈 때를 미리 생각하고, 정상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다.

한평생을 살다보면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승승장구 순조롭고 잘 나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이나 승리에 도취되어서는 안 되고, 피할 수 없는 죽음처럼 그것 역시 끝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앞에 가던 사람이나 뒤에 가던 사람이나 모두 종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앞에 간다고 우쭐대고 뒤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뒤에 간다고 앞을 시기하거나 기죽을 것 없다.

요즘 TV 뉴스를 보면, 더욱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골리앗 같던 거물급 인사들도 언젠가는 다윗의 돌팔매에 쓰러진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십일 가는 붉은 꽃 없다.

메멘토 모리!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영원한 승리, 영속적인 권력은 없다. 사람은 항상 죽음과 같은 마지막을 염두에 두면서 미리 준비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윤경 더리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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