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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정신건강에 대한 지혜로운 접근

입력
2019.06.10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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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의사에 교수였던 분이 정신치료를 못 받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정신병을 곱게 보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탓에 치료를 받지 않았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공중보건연구원으로서 의료 제공과 관련한 많은 제도적 허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2월에 시작된 ‘정신건강을 위한 여러 관계자의 감시 및 책임 협력’ 사업인 ‘카운트다운 글로벌 정신건강 2030’ 문제 해결에 고심하고 있다. 이 계획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요한 첨단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을 간과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정신과의사와 임상심리학자는 매우 부족하다. 짐바브웨 인구는 1,600만명인데 정신건강 전문가는 25명뿐이다. 이 나라는 ‘프렌드십 벤치(Friendship Bench)’와 같은 혁신적이고 유용하며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계획을 구축했지만 그것을 확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개발도상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돈 문제로 종합 정신건강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접근성 외에도 내 아버지 경우처럼 사회적 낙인의 문제가 있다. 임상 결과에 따르면 이 문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정신질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있는 사회에서 정신건강 관리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차별과 배척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맞서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환자는 낮은 자존감 및 자기 효능감을 갖거나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주저할 수도 있다.

이런 관리 실패의 결과는 매우 과소 평가되어 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질병, 장애, 때아닌 사망으로 인해 잃어버린 ‘건강한’ 삶을 의미하는 장애 생존 연수의 32.4%와 장애 보정 생존 연수의 13%를 정신건강 문제가 차지한다. 경제 비용도 엄청나다. 2015년 분석에 따르면 미국만 해도 정신건강으로 인한 경제 부담이 매년 2,100억달러를 넘는다. 그중 절반 이상이 잦은 결근과 생산성 손실에 따른 것이고, 5%는 자살 관련 비용이다. 정신건강 관리를 받는 대신 근로자들에게 정신을 집중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기대만큼 도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챗봇과 같은 AI기반 솔루션이 이로울 수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자연어를 모방하여 인간과 대화하는 가상 치료사 역할을 해 뾰족한 해법이 없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 임상심리학자들의 무작위제어 실험에서 정보만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보다 챗봇이 우울 증상을 감소하는데 더 효과적이었다.

챗봇을 이용한 임시정신 치료는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특히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개도국에서 스마트폰 접근 시간이 전례 없이 높은 지금 인터넷기반 솔루션은 정신건강 관리에 요긴할 수 있다. 정신건강관리를 꺼리는 사람들이 낙인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챗봇은 도움이 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최대 70%가 모바일 앱으로 자신의 정신건강을 스스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데 관심이 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챗봇을 사용한 사람들은 인간 치료사와 치료할 때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사생활을 보호하고 비난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AI 개발자와 협력을 확대할지 여부는 심리학자와 같은 임상의에 달렸다. 여러 미국 대학은 이미 임상과학 전문가와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연결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신건강 관리에 거의 대처하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언어문화적으로 적절한 가상 치료사를 개발하는 이런 협력 관계 구축에 대학이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 개발에 다양한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도 AI 연구에서 인종-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될 것이다. 연구원들은 사생활 및 책임성 규약을 위반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완전 대표 시험군을 이용해 이런 연구를 해야 한다.

물론 이런 계획에는 돈이 든다. 창업 투자회사들은 현재 국제보건에 관한 연구개발에 32억달러를 쓰고 있다. 이들은 투자 범위를 확대해 정신건강 치료에도 AI 기술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의식이 있는 기술 기반 기업인끼리 경쟁을 부추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AI를 이용한 정신건강치료는 인간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를 대체하지는 못하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챗봇은 환자와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챗봇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살 예비군처럼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게 하고 잠시 충동적인 행동을 막는 것이다.

수요와 필요로 종종 혁신이 생겨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신건강 관리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오랜 기간 실행 가능하고 가성비 높으며 확장 가능한 해법에 투자해 정신건강 관리 역량을 높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 치료를 더 늘려가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고 AI와 같은 최첨단 기술 활용을 주저해서도 안 된다.

주나이드 나비 미국 하버드대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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