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관람객 만을 위한 동물원은 생태계 보전·교육 말할 자격 없다

알림

관람객 만을 위한 동물원은 생태계 보전·교육 말할 자격 없다

입력
2019.06.07 15:00
수정
2019.06.07 18:45
12면
0 0

[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영국 휩스네이드 동물원 직원이 국제삼림협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국 휩스네이드 동물원 직원이 국제삼림협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육은 오락, 보전, 연구와 함께 현대 동물원이 내세우는 동물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특히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한 요즘에는 많은 동물원에서 환경 보호 교육을 한다. 영국 휩스네이드 동물원에서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설명회 마지막에 국제삼림협회(FSC, Forest Stewardship Council)를 소개한다. 이 단체는 무분별한 환경 파괴 없이 채취한 목재로 만든 상품에 인증을 준다. 이로써 동물과 생태계에 인간의 선택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호주 타롱가 동물원은 팜오일 대량 생산이 인도네시아의 오랑우탄과 호랑이의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팜오일을 사용한 식품을 사도록 독려한다.

동물원 스스로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며 재활용을 하는 등 환경 보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미국 우드랜드파크는 동물원 내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뚜껑을 제공하지 않는다. 동물 분뇨와 동물원에서 사용하는 물은 친환경적으로 처리한 뒤 버린다. 별생각 없이 동물원에 온 방문객들이 일회용품을 사용한다던가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자각하게 해, 의식적인 환경 보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동물원을 둘러보며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동물원은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많은 동물원들이 설명회, 표지판, 가이드북, 표본, 사진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를 막자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을 위해 굳이 동물이 동물원에 있어야 하고, 동물원을 새로 지어야 할까? 오스트리아 비엔나 동물원은 북극곰을 그대로 보유하고 태양광 장치 등 친환경적인 건물을 짓는 쪽을 선택했다. 이에 든 비용은 47억원이다. 그러나 동물원의 능력과 선택에 달렸지만 북극의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를 설명하기 위해 북극곰이 동물원에 반드시 있을 필요는 없다.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무디 가든은 북극곰을 데리고 오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더운 텍사스에서 북극곰을 위해 낮은 온도를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과 에너지 사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해양 생태계 보전을 위해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해산물을 먹지 말자는 캠페인을 한다.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 직원이 지속 가능한 팜오일이 표시된 제품을 알려주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 직원이 지속 가능한 팜오일이 표시된 제품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으로 동물원 동물들의 낡고 좁은 환경을 개선해줄 필요는 있지만, 새로 건물을 짓거나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건설 폐기물과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실제 많은 예산이 동물의 복지보다는 관람객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쓰인다. 동물원 안이 자연이라는 착각을 주기 위해 가짜 나무를 만들고, 열대우림 벽화를 그려 넣는다. 관람객에게 보이지 않는 뒤편은 예산을 들이지 않아 여전히 열악한 경우가 많다. 동물이 사는 환경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중요하지만 사실 동물에게는 의미가 없다. 동물에게는 진짜 자연, 무료한 시간을 채울 경험, 또는 선택의 기회가 더 절실하다.

요즘은 뉴질랜드의 오로코누이 생추어리처럼 그 지역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보여주는 곳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새로운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그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재앙인 동물원이 되며 교육과 보전을 말할 자격이 없다. 차라리 동물이 살기 더욱 적합한 기온과 환경을 갖춘 곳으로 보내는 게 비용과 노력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은 보유한 동물 종 수와 마릿수로 동물원의 순위를 매기는 시대가 아니다. 바람직한 동물원은 동물을 번식시켜 수를 무조건 늘리기보다 생태계 보전에 실제로 참여하고, 동물 없이도 환경 보호 교육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동물원이 떳떳하게 보전에 앞장서고 사람들을 교육하려면 동물의 희생 위에 올라 타서는 안 된다.

글ㆍ사진=양효진 수의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