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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다른 듯 같은 수목원과 식물원

입력
2019.06.0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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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위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그래도 도시를 떠난 숲으로 오면 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엔 초록빛 신록이 실려 싱그럽습니다. 막 시작하는 여름, 그래서 나무와 풀들의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이즈음의 수목원 숲길을 걷는 일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이른 봄엔 따사롭고 부드러운 햇살을 찾아 걸었지만, 나무 아래로 햇살을 피해 걷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혹은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혹은 한 그룹씩 모여 걷고 쉬고 보고 이야기하며 수목원을 즐기시는 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호젓한 키 작은 나무언덕 즈음엔 어김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연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 아름답다 싶습니다. 모두에게 행복한 충전의 시간이길 기원해 봅니다.

연구하여 보전한 복구머니란속 전문전시원을 관람하는 시민들.
연구하여 보전한 복구머니란속 전문전시원을 관람하는 시민들.

그렇게 수목원을 즐기시던 분들이 식물원에 가보자 하십니다. 그 말뜻은 대부분 저희 국립수목원 내에 열대식물 온실이나 난대식물 온실에 가보자는 말씀입니다. 참 궁금해집니다. 사실, 수목원(Arboretum)과 식물원(보태닉 가든, Botanic Garden)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기능과 역할에 대해 이를 별개로 생각하는 일은 없습니다. 미국의 아널드 수목원처럼 나무에 대한 연구나 전시를 좀 더 집중할 경우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영국의 큐가든이나 캐나다의 부차드가든처럼 아예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가 좀 특별한데 ‘식물원’이라는 이름 대신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많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국민들에게 식물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한 것이 1909년 만들어진 난초류를 주로 키웠던 창경궁 유리온실과 열대식물을 모은 남산식물원이었지요. 반면에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것은 1922년 설립된 홍릉수목원, 당시 우리나라 대식물학자인 이창복교수님이 북한에 평양식물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없다 하여 만들어지게 된 서울대학교 부속수목원, 목련속 식물의 수집이 특별히 의미 있는 천리포수목원, 겨울에도 인기 많은 아침고요수목원 그리고 산림청 국립수목원(당시 광릉수목원) 등등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수많은 식물을 모아 심어 둔 곳은 수목원, 작은 유리온실은 식물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한택식물원이나 신구대학식물원처럼 설립자의 뜻에 따라 식물원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제이드가든 같은 이름도 생겨나지만 여전히 수목원이란 이름을 붙인 곳이 훨씬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수목원이나 식물원도 크고 특별한 규모를 가진 정원의 한 종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여러 작은 정원들이 있기도 합니다. 식물을 심어 아름다운 공간으로는 ‘공원’도 포함될 수 있지만, 수목원 식물원이 공원과 다른 것은 식물들의 기록 관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은 참으로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원문화 선진국의 경우, 자연을 사랑하는 국민들은 늘 수목원이나 식물원을 찾아가 휴식은 물론 다양한 식물들과 이를 전시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작지만 아름다운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 일상입니다.

식물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수목원과 식물원은 1800년대 유럽 열강의 자원탐사의 결과물을 모아두었던 곳에서 시작하여 근대 식물분류학 연구 요람으로 그리고 식물 다양성 보전의 축으로 기능과 역할이 발전해 왔고 이제는 자원화의 원천, 국민들에게는 교육과 휴식, 자연을 매개로 한 인문과 예술이 이어지는 문화의 장으로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학계, 업계에서는 이 이름의 논란이 여전합니다. 이름만으로 따지자면 ‘식물원’이란 간판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꽃이나 조경수를 파는 화원이나 농장이며, ‘가든’이란 이름이 가장 많은 곳은 음식점인데 말입니다. 한 걸음만 떨어져 바라보면 당연한 일을 딱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이익이 되는 만큼 생각하고 주장하여 생긴 일이다 싶습니다. 풀과 나무들이 그들이 피워낸 꽃들이 이야기해주는 세상,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행복해지게 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좀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하나 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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