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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버스 파업갈등 자기방어 급급한 정부

입력
2019.05.14 16:30
수정
2019.05.14 20:4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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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파업과 주52시간제와는 관계가 없다.”(김현미 국토부장관) “(주52시간제) 사안과 관계없이 버스 요금을 올릴 때가 됐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근 전국 버스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을 두고 정부 책임자들이 내놓은 발언들을 보면 한결같이 주52시간제와 파업은 무관함을 강조하기에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지난해 3월 주5일제 실시를 예고했고, 노선버스 업계를 특례업종으로 제외하는 등 상당한 유예기간을 뒀음에도 이런 상황이 도래한 것을 굳이 정책적 실패로 연결시키고 싶지 않아서 일 게다.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 보면 정부측 판단 근거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서울시는 이미 주52시간제를 도입 중인데다 준공영제까지 실시하고 있어 초과 근무에 대한 우려나 적자 보전을 위한 임금인상 요인이 전혀 없다. 경기도 역시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모든 버스 업체가 준공영제와 주52시간제를 모두 도입 중이다. 노조측 협상 요구 내용도 근무나 처우 개선보다는 서울시 수준의 임금 인상에 방점을 뒀다. 타 지역도 대부분 준공영제나 1일2교대를 시행 중이어서 주52시간제와 직결된 파업 선언은 거의 없는 셈이다. 정부 대응 역시 이런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이번 파업사태가 결코 주52시간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당장 경기도 버스노조가 주장하는 ‘서울수준의 임금인상‘을 보자. 얼핏 명분이 약해 보이지만 본격적인 주52시간제 도래와 함께 전국적으로 대규모 기사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서울에서는 부족한 인원을 가까운 경기지역에서 충원하려고 할 테고, 경기지역 기사로서도 임금 수준이 높은 서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경기지역 버스 기사의 월급은 310만원 선으로, 서울(390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임금 체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 대규모 기사 이동으로 인한 수도권 교통대란이 우려될 수 밖에 없다.

일부 지역 노선버스 노조에서 요구하는 정년 연장도 결국 인력 확보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험이 미숙한 기사를 신규 선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숙련된 노동력을 정년이라는 이유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업무공백을 불러 올 수 있다. 7월 경기지역 버스에서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 기사 부족 등으로 도내 전체 노선 중 46%을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는 조사결과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오히려 정부가 지난해 3월 주52시간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버스업계를 특례업종으로 지정, 1년 유예기간까지 뒀음에도 이번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안일한 판단을 근원적인 패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인력 보충이 불가피하며, 버스 요금 인상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부는 이 카드를 줄곧 숨기고 있다가 파업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 꺼내드는 우를 범했다. 서민 물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요금 인상은 지자체 결정 사항이니 굳이 앞서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업을 앞두고 정부가 요금 인상 카드를 제시하고,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주52시간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는 시점에서 정부는 업계의 달라지는 근무제도에 맞춰 수익개선에 필요한 요금 인상액을 책정, 사전에 반영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득했더라면 국민의 저항감은 오히려 적지 않았을까.

주지하다시피 이번 버스 업계의 파업 진통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내년부터 300인 이하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주52시간제가 본격 도입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다가는 정말로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7개월 남짓,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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