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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어린 손흥민’ 꺾는 유소년시스템

입력
2019.05.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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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군산 수송구장에서 열린 금석배 전국 초등축구대회 경기. 올해부터 초등부 축구 경기는 11인제가 아닌 8인제로 치러진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 2월 군산 수송구장에서 열린 금석배 전국 초등축구대회 경기. 올해부터 초등부 축구 경기는 11인제가 아닌 8인제로 치러진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외국에서 온 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빠른 년생’ 서열문화다. 1, 2월 생일자들이 전년도에 태어난 이들과 함께 학교에 들어가 벌어지는 일이다.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로부터 동생 취급을 받으며 무시당했던 ‘빠른 년생’들은 사회에 진출해선 친구와 선후배간 서열을 꼬이게 한 원흉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어린 나이로 입학한 자녀가 학교생활에 부적응할까 우려해 일부러 1년 늦게 학교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취학기준을 변경하도록 법이 개정됐고 본격 시행된 2009년이 돼서야 ‘빠른 년생’은 사라지게 됐다.

‘빠른 년생’이 구박 받았다면 축구 등 유소년 스포츠에선 ‘늦은 년생’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유소년 육성 전문가인 미하엘 뮐러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은 지난달 ‘한국축구 정책보고회’ 자리에서 “어린 선수들의 눈에 보이는 신체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신체의 성장은 더디지만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또래보다 덩치가 크거나 빠른 선수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창 클 나이엔 동급생이라도 몇 개월 차이가 크다. ‘오뉴월 병아리 하루 볕이 새롭다’ 하지 않은가. 유소년 축구의 경우 출생 시기에 따른 체격 조건 차이로 빠른 생일의 선수들이 주로 선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선택 받은 빠른 생일자들은 더 나은 훈련을 받게 되고 출전 경험을 쌓는 반면, 뒷전으로 밀린 늦은 생일자들은 경기 경험을 얻기 힘들어지면서 발전이 지체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실제로 현재 14세 이하(U-14) 축구 대표팀의 경우 21명 중 18명이 1~6월 태생이라고 한다. 고작 몇 개월의 신체 차이에 현혹된 어른들의 부족한 안목 때문이다. 오뉴월 하루 볕 차이가 이렇게 무섭다.

중ㆍ고교 시절 저학년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초등학교 때 아무리 뛰어났어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선배들에 밀려 게임에 나설 수 없다. 중2때 몇 경기 뛰고는 중3이 되고서야 주전이 될 수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또 반복된다. 축구 선수로 크기에 가장 중요한 중ㆍ고교 6년 중 절반 이상을 경기에 뛸 수 없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올해부터 초등부 경기에 8인제를 전면 도입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11명씩 뛰는 어른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8인제는 아이들이 경기를 즐기면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경기 방식이다. 경기 중 감독이 함부로 지시할 수 없도록 한 것도 그 이유다. 1대 1 상황을 더 경험할 수 있고, 더 많은 볼 터치와 패스, 슛이 가능해졌다.

유럽에선 이미 유소년 축구에 8인제뿐 아니라 2인제부터 9인제까지 다양한 형태로 경기 인원을 줄인 스몰사이드 게임을 시행하고 있다. 8인제는 단순히 선수 수와 경기장 크기만 줄인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이다. 팀의 승리 보다는 개인의 성장이 목표여야 한다. 한 경기 한 경기를 통해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매 경기 승패가 팀과 선수의 장래를 결정한다. 진학에 목을 매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지도자가 승패에서 관심을 거두긴 쉽지 않다.

손흥민이 지금 유럽 무대를 휘젓고 있는 건 선수 출신 아버지가 탄탄하게 기본기를 갖추게 해준 덕분이다. 아버지는 손흥민의 어린 시절 기본기만 반복 훈련시켰다. 근육과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체력, 슛 훈련은 철저히 배제했고, 시합도 내보내지 않았다. 손흥민은 축구 명문 중학교로 옮긴 뒤에야 처음으로 정식 경기를 뛰었다고 한다.

우린 제2의 손흥민을 원하면서도 정작 어린 축구천재들을 못 알아보거나 체력훈련에 혹사시켜 발목을 상하게 하고,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축구만 이런 걸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잠재성을 얼마나 키워내고 있는가. 안목이 부족한 어른들이 당장의 성적에만 집착하며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그냥 방치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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