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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교사의 오월 단상(斷想)

입력
2019.05.0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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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해 5월 15일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이효연 선생님이 제자들을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해 5월 15일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이효연 선생님이 제자들을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오월에는 행사가 많다. 각자 소회가 다르겠지만 직업 때문인지 필자는 오월이 교육의 달처럼 느껴진다. 어린이날을 보면서 어버이날을 거쳐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일정은 마치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나는 통과의례를 보여 주는 듯싶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린아이가 물과 불에 다친다면 어머니의 잘못이다. 철이 들었는데도 스승을 찾아 배우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잘못이다. 스승에게 배우고도 방향도 없고 깨달은 바가 없다면 스스로의 잘못이다. 이미 깨달았는데도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벗의 잘못이다.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 천거하지 않는다면 담당 관리의 잘못이다. 관리가 천거했는데도 등용하지 않는 것은 임금의 잘못이다.”

처음 이 글을 읽고서는 그냥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면 아이와 부모, 스승과 벗, 사회나 나라의 역할이 정확히 제시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인간의 사회적 역정에 대한 개괄과 같다. 물론 본인의 자각이 중요하다는 점도 배제하지 않는다.

스승의 도리에 대해서는 당나라 한유(韓愈, 768~824)가 ‘사설(師說)’에서 쉽게 잘 써놓았고, 우리 조상들도 그 글을 좋아하여 아직도 많은 한문교재에 소개되고 있다. 한유는 삶의 도리를 알려주고(傳道), 의혹을 풀어주고(解惑), 학업을 전수(授業)하는 존재가 스승이라고 본다. 자식을 아끼는 부모들이 스승을 골라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만 정작 부모 자신들은 스승을 모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질타하였다. ‘사설’은 스승을 따르지 않는 당시의 풍조를 비판하기 위해 지은 것이지만, 본래 스승의 권위는 지고무상 했다. 중국 교육이론의 원조인 ‘학기(學記)’에는 임금이라도 스승은 신하로 삼지 못한다(弗臣)고 하였고, 스승은 천자를 만나더라도 북면(北面)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자의 입장에서는 존경하고 평생 따를 하늘같은 스승이 필요하다. 옛날 스승의 날 행사에 불렀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는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라는 가사가 있었다. 그 말의 출전은 ‘논어(論語)’다. 안회가 공자를 찬탄하면서 다음같이 말했다. “우러러보니 더욱 높고, 뚫으려하니 더욱 단단하며, 바라보니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계시도다.” 여기서 “우러러보니 더욱 높고(仰之彌高)”가 가사로 차용된 것이다.

공자가 이런 안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논어’에 넘쳐난다. 그중 하나만 살펴본다. “안회는 나를 돕는 자가 아니구나! 나의 말에 대해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제자에 대한 공자의 사랑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공자도 사람인데 자신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제자가 어찌 미쁘지 않겠는가.

예기(禮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서로 문답하며, 선생님 생전에 듣지 못한 것이 있으면 벗에게 들어서라도 알고자 했다.

어느 날 유자가 증자에게 물었다. “벼슬을 잃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선생님께 들었는가?” 증자는 공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어 대답할 수 있었다.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고 싶고, 죽으면 빨리 썩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벗이 몰랐던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가르쳐 주었는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온다. 유자가 “이것은 선생님 같은 군자가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증자는 “선생님한테 직접 들은 말이고 자유(子遊)도 함께 들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유자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무슨 까닭이 있어서 말씀한 것이지 일반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응대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상한 증자가 자유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런데 자유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유자가 말하는 것이 선생님과 비슷하구나! 선생님께서 송나라에 계실 때 환퇴라는 자가 돌로 된 덧널을 만드는데 3년이 돼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사치하느니 죽어서 속히 썩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셨다. 노나라에서 벼슬하다 쫓겨난 남궁경숙이란 자는 기회를 얻어 돌아오게 되자 임금을 만날 때마다 보물을 싣고 왔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이렇게 뇌물을 쓰느니 벼슬을 잃고는 빨리 가난해지는 것이 낫다’하셨다.”

공자는 호화롭게 관을 만들어 시신을 오래 보전하고자 하는 자를 보고 ‘죽으면 빨리 썩는 게 낫다’한 것이고, 벼슬할 때 축재한 재화를 뇌물로 쓰는 것을 보고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는게 낫다’한 것이다.

증자가 들은 말은 일반론이 아니라 한심한 작태를 보고 개탄스러워 말한 것이었다. 유자는 사람의 상정(常情)을 벗어난 말을 공자 같은 군자가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증자의 말을 듣자마자 사연이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었다.

‘예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한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일반론을 특수한 상황에 적용해 이해하는 것과, 반대로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말을 일반화하는 두 가지 오류를 경계하고자 기록된 것이라고 본다. 유자 같은 제자를 둔 공자가 부럽고, 유자 같은 제자가 되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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