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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낙태 반대의 위선으로 죽어가는 여성

입력
2019.05.06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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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낙태 반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법적 권리가 있어도 권리 행사에 필요한 시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낙태 반대론자들은 애당초 여성들이 왜 낙태 결정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위험한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요해서 여성의 건강과 복지를 무너뜨리기 보다, 여성의 개인적 자유와 신체적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고 적절치 못한 논쟁으로 개념이 애매해진 상황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먼저 낙태를 보건문제로 다루지 않는 다면 정책적 논의는 종종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진보적인 낙태법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성은 “응급치료가 필요하거나,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태롭거나, 다른 모든 성문법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 임신을 중절할 권리가 있다) 낙태 반대로 인해 이 권리를 행사할 기반이 약화하고 있다. 이는 이 법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낙태를 불법화하는 것으로 낙태를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오히려, 케냐에서와 같이, 당국이 정식으로 안전하게 낙태수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의사를 잡아 가두게 되면, 여성은 아주 위험한 방법도 마다 않고 낙태시술을 하는 사람에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날카로운 도구로 자궁에 구멍을 내고, 심지어 산모의 배에 앉아 태아를 밀어내거나, 안전하지 않은 약물을 처방한다.

이런 불법 낙태시술자에게 가지 않으려는 여성들은 진통제를 들이키거나 독한 세제를 삼키는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강행하려고 한다. 그러다 죽는 사람도 있고 자궁을 잃게 된 사람도 있으며, 자궁경부의 누공과 같은 합병증에 평생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생식보건 분야에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충동적으로 낙태를 결정하는 여자는 없다. 기분이 좀 안 좋다고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돈까지 주면서 자궁에 구멍을 내라고 하진 않는다. 비난한다고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 임산부의 필요, 권리, 복지보다 태아의 발육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도 소용이 없다. 그저 건강과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한 낙태를 할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그 대신, 낙태에 대한 수요를 줄이려면 포괄적인 성교육(CSE)이 필요한 어릴 때부터 계속된 제도교육이 실패한 결과가 바로 낙태 수요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CSE는 청소년들에게 성과 관계에 대해, 나이에 맞게, 문화적으로 민감하게, 현실적으로, 비판적이지 않게,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가르쳐주며, 특히 어린 소녀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지킬 권한을 갖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는 성별 기반 접근법을 적용한다면, 피임약 사용을 늘리고 10대 임신율을 낮출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다. 케냐 헌법 제35조는 모든 시민에게 ‘모든 권리나 근본적인 자유의 행사 또는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우, 그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한다. 여기에는 제43조에 명시되어있는 생식보건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다.

그러나, 낙태에 관한 권리처럼, CSE를 받을 권리도 종교지도자들의 도덕을 앞세운 저항, 낙태 반대운동뿐만 아니라, 교과과정의 미약한 보급과 제대로 교육받은 교사의 부족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해 존중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로, 근거 없는 믿음과 오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것은 재정 부족이나 문화적요인 (생식보건 문제에 남성의 개입이 미미함)과 함께 피임약 이용을 낮추고 있다. 현대적인 피임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케냐 여성의 58%만이 실제로 피임도구를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10대 임신율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소녀와 여성을 불구나 죽음의 위험으로 내모는 제도적인 실패를 해결할 때다. 치료보다 예방이 낫다. 보건예산에 피임 예산을 넣고, 학교 교육에서 양질의 CSE를 확보하며, 청소년 친화적인 생식 보건 서비스 등이 예방책이다.

예방뿐만 아니라 치료도 필요하다. 여성 처벌 규정은 국제인권 규범에 맞춰 안전한 낙태시설 이용을 포함해 여성의 생식에 대한 자유를 보호하는 현대적 법률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식 낙태시술자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종식시키기 위한 문서화된 지침도 필요하다.

CSE 시행도 제대로 못하고, 가족계획에도 충분히 투자하지 않은 정부가, 어떻게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여성을 처벌할 수 있을까? 여성의 고통을 무시하는 사회가 어떻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은 사회 때문에 피해를 입은 희생자를 비난 할 수 있을까?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패트리샤 누디 오라워 케냐 키수무 의료교육기금 옹호책임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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