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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입력
2019.04.1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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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서 ‘너나들이프로젝트’공연단원들이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서 ‘너나들이프로젝트’공연단원들이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고등학교 시절 봄에 줄기차게 불렀던 ‘사월의 노래’다. 1970년대에 고등학교에 다녔던 남학생의 감성이 그렇게 뛰어났을 리는 없고, 음악선생님이 중간고사 대신 노래로 성적을 매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학교에는 목련 꽃이 잔뜩 피어 있는 작은 정원도 있었기에 잘 부르는 친구 노래를 들으면, ‘도대체 베르테르가 누군데 우리에겐 편지를 안 보내는 거야?’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덧 동급생들은 정말로 목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목련이 지고나자 애정이 급격히 식었다. 꽃이 피어있을 때는 희고 풍성한 커다란 꽃잎이 아름다웠는데, 꽃이 지고 나니 무슨 곰팡이가 핀 식빵처럼 추적추적해져서 보기에 안 좋았다. 지금도 떨어진 목련 꽃잎은 밟기도 싫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목련을 처음 목격한 생명체는 공룡이다.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는 크게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로 나뉜다. 뒤쪽으로 갈수록 공룡이 커지고 다양해진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들은 대부분 백악기 시대의 공룡이다. 쥐라기에 살았던 알로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목련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이때는 목련뿐만 아니라 꽃이 피는 식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꽃식물은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백악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목련도 이때 등장했다. 그러니까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벨로키랍토르 그리고 서울대학교 이성진 연구원이 이융남 교수와 함께 지난 2월 발표한 고비랍토르는 목련을 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낼 베르테르는 아직 없었지만 말이다.

목련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꽃이다. 심지어 꿀샘이 없다. 꽃이 꿀을 만드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수분을 도와주는 벌과 나비에게 줄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꽃가루를 먹는 딱정벌레를 유인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커다란 꽃과 진한 향기가 필요했다.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편지를 읽는 사람이 배를 탄 것인가, 아니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배를 탄 것인가. 알 도리가 없었다. 음악 선생님은 가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으셨다. 교정 곳곳에서 (국어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부르던 우리는 결국 괴테를 찾게 되었다. 노래에 등장하는 베르테르가 독일 문학가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왔다고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소설 속 젊은 베르테르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를 잊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난다.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사월의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사월이 빛나는 꿈의 계절인 것은 알겠는데, 왜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인지는 알지 못했다. 베르테르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샤를로테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완전히 실연당한 것이다. 샤를롯데가 빌려준 권총으로 베르테르는 자살을 한다. 그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에 묻힌다. 아마 괴테 역시 소설을 쓸 무렵 실연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생생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우리도 베르테르와 한 몸과 한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베르테르가 샤를롯데에게 실연을 당했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든, 잠시나마 스스로 베르테르로 살았든 상관없었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금세 잊었다. 4월은 여전히 빛나는 꿈의 계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얻고 내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도 4월은 언제나 빛나는 꿈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둑을 맞은 것처럼 빛나는 꿈의 계절인 4월을 잃었다. 새순이 돋고 봄꽃이 만발해도 4월은 슬픔을 벗어나지 못하는 계절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하나의 사건일 수 있었다. 한 번 진하게 슬퍼하고 반성하고 안전대책을 세우면 그만 잊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원인을 모른다.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를 신나게 불렀을 그 아이들이 왜 가만히 있어야 했는지, 왜 바로 옆까지 간 해양경찰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왜 사고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지, 유가족은 왜 감시를 당하고 고통을 받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벌써 5년이 되었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망각할 자유와 권리를 빼앗겼다. 모르니 잊을 수 없다. 당시 권력자들은 물러났다. 심지어 당시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그런데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지를 쓰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에 기대 스스로 묻는다. “떨어진 목련꽃이 추적추적해 보인다고 욕하지 마라. 너는 공룡에게 향기를 뿜어봤느냐?”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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