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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미룬 채 스피치 과외도… ‘평창’이 기억해야 할 조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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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미룬 채 스피치 과외도… ‘평창’이 기억해야 할 조양호

입력
2019.04.08 14:47
수정
2019.04.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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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조양호 위원장이 귀국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조양호 위원장이 귀국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체육계에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대한항공 그룹 산하에 배구단과 탁구단을 운영하며 스포츠에 애정을 보인 조 회장은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체육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두 차례 유치 도전에 실패한 평창에 ‘기업가 구원투수’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조 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선임됐다. 김 전 지사가 2010년 6월 퇴임하면서 단독위원장이 된 조 회장은 기대대로 항공사 총수로 쌓은 폭넓은 네트워킹으로 22개월 동안 기업 경영도 미뤄둔 채 해외 50만9,000㎞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조 회장은 특임대사 김진선, 피겨여왕 김연아 등 7명과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올라 가슴 절절한 호소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잦은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기르고자 스피치 개인 과외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으로 2012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도 선임된 조 회장은 2014년 7월 김진선 초대 위원장의 뒤를 이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올림픽 준비는 물론 평창조직위와 IOC를 잇는 가교 노릇을 왕성하게 펼치던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불과 647일 앞둔 2016년 5월 3일 조직위원장을 전격 사퇴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조 회장은 긴급한 그룹 현안을 수습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훗날 사퇴에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최순실 정권’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한 특별검사팀에 의해 훗날 밝혀졌다. 특검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 시공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조 회장을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정황을 확인했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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