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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마음풍경] 콤플렉스와 대면하기

입력
2019.03.2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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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지 않고,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빛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점은 내 안의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도 편애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차별없이 보듬는 것, 바람직한 측면뿐 아니라 부끄러운 측면까지 전체성(wholeness)으로 끌어안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다. 콤플렉스도 자랑거리도 자신의 일부일 뿐 나 자체는 아니며, 매순간의 실천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마음챙김이 대면(confrontation)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그림자와의 만남’이 대면의 결정적 단계임을 강조한다. 그림자와 만난다는 것은 뼈아픈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까지 인정하고, 묘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대면하는 길을 발견했다. 예컨대 처음에는 ‘나의 콤플렉스’를 써보고, 다음에는 ‘그럼에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를 써본다. 순서가 중요하다. 뒤로 갈수록 ‘더 나은 나, 더 깊은 나’와 만날 수 있는 순서로 간다. 첫째, 처음에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을 써보고, 두 번째에는 ‘그럼에도 자신이 기특했던 순간들’을 쓴 뒤, 마지막엔 ‘지금 가장 하고픈 일’을 써본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가장 깊은 그늘을 통과하여 마음의 가장 밝은 빛을 만나고 마침내 그림자와 빛을 통합하는 전체성을 만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콤플렉스를 쓰고 있으면, 우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만성적 수면부족, 진정한 휴식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것, 놀 때조차도 일을 생각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할 때 솔직하게 감정을 말하지 못한 것, 말을 할 때 너무 ‘에둘러서’ 표현하다가 진짜 할 말을 못하고 돌아서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가장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의 습관, 사랑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꼬일 대로 꼬인 방식으로 표현해도 상대방이 언젠가는 날 이해해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낙관주의, 행복한 순간에조차 온갖 걱정과 슬픔에 집착하며 결국 행복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마음의 병. 이렇듯 그림자를 묘사하다보면 삶의 핵심 트라우마와 만나게 된다.

둘째, 그래도 기특한 점을 나열해 본다. 부모님의 반대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간절한 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점. 나의 꿈, 좋은 글을 쓰는 것 이외의 삶에는 곁눈질하지 않은 것. 설령 친구들의 삶이 대단해 보여도 ‘질투할 시간조차 없다, 좋은 글을 쓰려면!’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고삐를 틀어쥔 것이 기특하다. 많은 친구를 두진 못했지만, 소수의 사람을 깊이 사귄 점도 마음에 든다. ‘넓이’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인간관계가 자칫 편협해 보이더라도 더 ‘나다움’에 가까운 것이기에. 소문난 길치에 심각한 영어울렁증에도 불구하고, 적금을 깨서라도 매년 배낭여행을 다녔다는 점도 좋다. 내가 사는 곳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무작정 머무는 체험이 내게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준 것이다.

셋째, 마지막에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쓴다. 연락이 끊어진 그리운 친구에게 전화걸기,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눈물샘이 다 마르도록 실컷 울기, 다음날에 대한 걱정없이 지상 최고로 달콤한 숙면 취하기. 이런 소박한 꿈들이 내 꾸밈없는 마음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야 그 모든 자기혐오와 싸워 끝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자신을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 한 번도 스스로를 진심으로 칭찬해본 적 없는 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와의 대면은 아픈 일만은 아니다. 마침내 나의 그림자와 만나는 것, 그것은 평생 ‘달의 앞면’만 보던 삶을 뛰어넘어 ‘달의 뒷면’까지 탐험할 수 있는 용기다. 자신의 전체성과 만나 마침내 더 빛나는 자기실현의 길에 이르는 것이 ‘대면’의 궁극적 지향이다. 심리학적 대면은 자신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지나친 긍정심리학의 유아성과 결별하는 것이다. 대면은 상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차별없이 끌어안아 마침내 더 크고 깊은 나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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